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창작자 앗아간 영화계의 방관

생활고로 인해 생을 마감한 한 젊은 영화인의 죽음에 영화계가 비통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예술가의 생존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를 비난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창작자의 재능과 노력을 착취하는 영화계의 잘못된 수익구조를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에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사실 업계 관련자에게는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스태프ㆍ작가 등 창작집단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워낙 해묵은 이야기라 이 정도 비극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기 때문이다. 사건 후 영화인들의 온라인 게시판에 "내 얘기 같다"는 사연이 줄줄이 올라올 정도였다. 실제로 고인의 죽음 후 영화산업노조가 지난 8일 밤 내놓은 성명에 따르면 영화 스태프의 연평균 소득은 2009년 기준 623만원에 불과하다. 예술인의 지위를 보장하고 창작활동을 보호하는 내용의 '예술인 복지법' 제정안도 2009년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겉으로는 '문화 강대국'을 외치면서 예술가는 보호하지 못했던 정부도, 창작자는 소외시킨 채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에만 급급했던 투자자도 이번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가장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꿈과 열정만으로 쥐꼬리만한 급여를 견디며 일하는 젊은 창작자들을 외면하고 자신들이 만든 잘못된 관행을 방관한 주류 영화인이 아닐까. 이들은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시나리오 작가의 저작권을 보호해주지 않고 스태프에게 체불을 일삼으며 젊은 창작인들의 꿈을 저당잡아온 장본인이다. 얼마 전 개봉한 한 대형 작품의 스태프들이 감독의 거친 언행과 과도한 노동에 치를 떨며 자신들이 참여한 영화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얘기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영화인 중에 자신의 자녀가 영화를 하겠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독려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영화인조차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제작 환경은 영화계에 뛰어들었던 창작집단의 꿈과 열정뿐 아니라 목숨까지 서서히 앗아가고 있다. 고인의 죽음은 영화계 전체의 방관이 부른 '사회적 타살'이 아니었는지 영화인 스스로 처절히 반성해야 할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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