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QE3에 맞선 외환시장 개입 사전차단 포석

■ 美의회, 환율전쟁 칼 한국 겨눈다<br>日도 추가 양적완화 맞불<br>한국마저 나설 경우엔 수출 증진 효과 감소 우려<br>한미 FTA와도 결부시켜 일정수준 양보 요구 가능성


미국 하원의 대표적 '매파' 모임인 무역실무그룹(HTWG)이 한국의 환율 시장 개입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나섬에 따라 우리나라 역시 좋든 싫든 글로벌 '환율전쟁'의 한복판으로 끌려갈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마이크 미쇼 HTWG 의장이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과 론 커크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보낸 공개 서한은 현재로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문제 제기 수준이다. 하지만 ▦미 대선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점이라는 점 ▦환율 문제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결부해 미국을 일방적 피해자로 묘사한 점 등을 감안하면 향후 불길이 번질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HTWG와 미쇼 의장은 지난 2010년 하원 세입위원회 청문회에서 중국의 환율조작으로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지난해 10월 미 상원이 중국 위안화 평가 절하에 대응해 보복관세를 물리는 내용의 환율감시개혁법안 통과를 이끌어낸 바 있다. HTWG가 무역 관련 정책에서 미 정치권과 행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만큼 한국의 통상ㆍ외환 정책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미, 환시 개입 사전 차단 포석=미쇼 의장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미국과 FTA로 연결된 한국 정부가 환율 조작에 나설 때 어떤 협의 절차를 거치는지 ▦환율 조작이 미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향후 관세 철폐 일정 ▦환율 조작으로 피해를 받은 미국 기업의 대응수단은 무엇이 있는지 등 3가지 핵심 사항에 대해 공식 답변을 요구했다.

일단 HTWG가 왜 하필 지금을 골라 한국을 겨냥해 환율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쇼 의장은 이러한 의문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3차 양적완화(QE3)를 선언한 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한국에 대한 경고가 나왔다는 점은 되짚어볼 만한 대목이다.

양적완화는 FRB가 달러를 찍어 시중에 공급하는 통화 정책으로 자연히 달러가 흔해져 달러 가치 하락을 부추긴다. 이런 흐름은 미국 내 수출업자에게는 유리하지만 반대로 미국을 주요 수출 시장으로 삼는 한ㆍ중ㆍ일 등 아시아 기업들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일본 중앙은행(BOJ)이 지난 19일 10조엔 규모의 추가 양적완화를 발표해 맞불을 놓은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과 자동차ㆍ전자제품 등을 두고 라이벌 관계에 있는 한국마저 환시 개입에 나설 경우 수출증진 효과를 보기 어려운 구조다. 실제로 미쇼 의장은 BOJ가 엔화 공급 포문을 열자 바로 이튿날 재무부에 곧장 공개서한을 보냈다.

관련기사



그는 "1996~2010년 동안 미국의 한국 물품 수입 물량은 115%나 늘었고 그 사이 무역적자 규모는 100억달러 이상으로 커졌다"며 "한국이 자국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환시장을 조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행정부에 한국의 환시 개입을 제지해달라고 노골적으로 주문한 셈이다.

하지만 미 정치권의 우려와 달리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 정부가 원ㆍ달러 환율에 크게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수출 시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히려 원ㆍ엔 환율이며 외환 당국은 원ㆍ달러 환율이 달러당 1,100원 밑으로 떨어질 때까지는 시장을 지켜볼 수 있다"고 말했다.

◇FTA 인질로 잡나=이번 공개 서한의 주요 특징은 원ㆍ달러 환율과 한미 FTA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었다는 점이다. 한국은 FTA로 막대한 이득을 얻지만 미국은 환율 장벽 때문에 사실상 손해를 본다는 식의 대립 구도다.

때문에 향후 미국 정치권이 FTA를 빌미로 한국에 일정 수준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HTWG는 한국의 환율 조작과 향후 관세 철폐 일정에 대한 분석 결과를 재무부와 USTR에 요구했다. 환율이 원하는 수준으로 조정되지 않는다면 관세 철폐 일정 등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쇼 의장은 지난달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관련해 환율 조작을 금지하는 조항을 삽입하는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미쇼 의장은 이 공개 서한의 공식 답변에 대한 데드라인을 설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가 언제 어떤 식으로 HTWG의 문제 제기에 대응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서일범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