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전투기 선정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돈이 더 들어갈까 아닐까. 증액이 불가피해 보인다. 전투기는 돈이기 때문이다. 한국 공군 보유기 가운데 가장 강력한 전투기인 F-15K는 대당 1억달러를 웃돈다.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은 F-35A는 이보다 50% 이상 비싸다. 미국이 최신예 F-22전투기를 700여대 생산하려던 당초 계획을 187대 실전배치 상태에서 접은 이유도 무한정 들어가는 예산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전세계 총국방비의 39%를 혼자 쓰는 미국조차 이런 사정일진데 국방예산이 미국의 4.6%에 불과한 한국의 처지에서는 예산을 민감하게 의식하는 게 당연하다. 더구나 전투기를 일단 도입하면 약 30년 유지ㆍ운용하는 데 구매가격의 3배가 들어가기에 지출이 단발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역대 공군참모총장 출신 예비역 장성 15명을 비롯한 군사전문가들은 '예산을 증액해서라도 스텔스 기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나라살림의 형편이 좋지 않다. 재정적자는 쌓이는데 세수는 줄고 경직된 복지예산으로 대통령 공약까지 수정하는 판이다.
물론 안보를 돈으로 따질 것만은 아니다. 흔히 말하듯이 안보가 없다면 경제도 없다는 논리는 타당성을 갖는다. 동시에 경제가 없다면 안보도 없다는 논리도 성립될 수 있다. 무게 중심은 어느 쪽에 있을까. 후자에 있다. 우리가 전쟁 중이거나 풍전등화(風前燈火) 상태라면 동원 가능한 모든 재원을 국방비용으로 투입하는 게 마땅하지만 평시라면 최소한의 억제력을 유지하는 게 온당하다.
관건은 최소한의 억제력이 과연 어느 정도라야 되는가에 있다. 우리의 전력은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있는 정도일까. 견해가 분분하지만 가능하다는 게 정설이다. 주한 미공군의 전력과 감시정보력까지 합치면 북한은 한미연합군의 상대가 안 된다. 혹자가 얘기하는 북의 핵폭탄 제조시설을 폭격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면 스텔스기 정도로도 부족하다. 미국만이 보유한 F-22라면 모를까, 유력한 차기전투기 후보로 급부상한 F-35A는 제한된 폭장량(폭격수단 탑재량) 때문에 작전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전상대가 주적인 북한이 아니라 스텔스기를 도입 중인 주변국(중국ㆍ러시아ㆍ일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항공모함을 갖췄다고 한국이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보 시나리오를 무한정 확정한다면 경제가 당해낼 수 없다. 안보환경을 냉철히 따지고 한국 공군이 당면한 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게 정답이다. 공군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전투기 세력은 약 460여대에 이르지만 노후화가 심각한 F-4ㆍF-5기종이 절반이 넘는다. 앞으로 10년 안에 노후기가 퇴역하면 전투기 숫자는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여기에 주력인 F-16시리즈도 노후화와 RF-4정찰형 전투기의 퇴역에 따른 정찰기 전환 등으로 전력이 약해질 수 있다. 정부는 전투기선정 연기에도 전력 공백이 없다고 강변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대안은 크게 세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단일기종을 고수할 게 아니라 도입기종을 섞는 것이다. 항속거리나 이륙중량ㆍ무장탑재량ㆍ속도에서는 여전히 초일류인 F-15와 스텔스기인 F-35A를 동시에 도입하면 스텔스기에 대한 갈증을 해갈시킬 수 있다. 다만 이 경우라도 시험기조차 없이 부분적 스텔스 기능을 갖췄다고 선전되는 F-15SE가 아니라 F-15K보다 진일보한 F-15SG의 도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임대 전투기 도입이다. 마침 미국의 보관기나 스웨덴의 그리펜, 심지어 유로파이터도 줄줄이 국제 임대시장에 나오는 상황이다. 비용 때문에 도입대수가 줄어들어 도태되는 전투기를 1대1로 교체할 수 없는 마당에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임대 형식은 새로운 대안으로 꼽힌다. 셋째는 한국형차기전투기(KFX)사업과 연계다. 직도입이든 임대든 국산전투기사업과 동시에 추진한다면 비용 절감과 국내 기술 축적ㆍ개발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기 마련이다. 표류하는 듯한 차기전투기사업에서 확고한 중심을 잡는다면 재정압박을 줄이며 안보를 지켜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