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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품격을 높여라] 문화의 품격
나꼼수서 SNS까지… 자정능력 잃은 사회, B급 문화가 주류로모바일공간 판치는 저질·외설케이블·공중파 방송까지 가세정치권 무비판적 수용도 한몫여과력 키우고 시민공감 얻어야
황정원기자 garden@sed.co.kr
"니가 웃통 벗어제끼고 배에 '민주(당)' '진보(당)' 쓰고 (중략) 박빙 지역을 막 뛰어다니면 민주당 야권 다 죽는 거야 ×발."
지난 9일 요즘 모바일 팝캐스트의 대세로 군림하고 있는 '나는 꼼수다' 1부 방송. 김어준 공동 진행자는 김용민 당시 국회의원 후보에게 사퇴 요구를 하던 민주통합당과 야권을 향해 "(민주당이) 사퇴 어쩌고 하면 '한번 죽어볼래' (하는 거야)"라고 힐난했다.
총선을 이틀 앞두고 김 후보의 막말 파문으로 정국이 뜨거웠던 시점에서 나온 이날 나꼼수 방송을 놓고 보수 성향의 일간지들은 일제히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앞서 나꼼수 진행자들은 방송 하루 전인 8일 서울광장에서 6,000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나꼼수 삼두노출 대번개 행사'를 열어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 역시 대부분 언론에 보도되면서 큰 화제가 됐다.
나꼼수를 접한 젊은 세대 상당수는 금기를 깬 막말과 욕설, 그리고 성역 없는 비판에 매료됐다. 나꼼수는 강한 오락성을 즐기며 '의식 있는 젊은이'인 양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마니아들을 양산했다. 아류 나꼼수 방송들이 줄을 이으면서 어느새 모바일 공간은 막말의 천국이 된 양상이다.
이 같은 나꼼수 신드롬에 기성세대들은 충격을 받고 있다. 청취자만도 1,000만명을 넘는다는 얘기에 기성세대들은 한번 놀라고 저질ㆍ외설 발언에 또 한번 경악한다. 이에 더해 기성 정치권이 나꼼수 일원인 김 후보를 '모셔오는' 기민함을 발휘하자 기성세대들은 핵심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듯 보이는 나꼼수의 위상에 거듭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전형적 B급 문화이자 일개 팝캐스트 방송인 나꼼수가 2012년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정확히 말해 주류문화의 하위에 머물던 B급 문화가 여과 없이 전면으로 부상하고 햇볕 가득한 광장으로 나오면서 한국의 문화가 오염되고 있는 것. 문화비평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한국사회가 진정 새롭다고 하는 B급 문화를 생산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인기 위주로만 부각되다 보니 진짜 B급 문화는 감춰져 있고 관심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B급 문화 본질에 대한 의문이다.
문화품격 훼손현상은 단지 나꼼수 탓만이 아니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인터넷 공간에서 각종 성인방송, 심지어 불법 포르노 방송까지 활개를 쳐왔다. 이번에 문제가 된 김용민 막말 사건 역시 19세 금지의 성인 인터넷 방송에서 벌어진 일이 뒤늦게 공개됐을 뿐이다. 방송인 김구라도 10년 전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의 막말 논란으로 최근 방송에서 하차했다.
인터넷 방송과 '악플' 등으로 숱한 물의를 빚어온 저질 B급 문화들은 스마트폰 보급으로 급기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만개하고 있다. B급 문화란 애당초 점잔과 품위를 거부하고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것은 물론 사회 통념상 용인되기 힘든 사고나 행태들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런 B급 커뮤니티들이 모바일 시대를 맞아 SNS와 결합하면서 더욱 자극적이고 상스러운 문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상황이다. 한 문화평론가는 "과거 인터넷 게시판 문화에서 SNS로 바뀌고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속도와 집중도가 무척 빨라졌다"며 "자기가 선호하는 사람의 말만 볼 수 있는 SNS를 통해 B급 문화가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인터넷ㆍ모바일에서 횡행하는 저질 B급 문화는 급기야 케이블ㆍ공중파 방송까지 변질시켰다. "(바지가) 똥꼬 확 먹고, 보기 싫어." "야! 너 살쪄, 인마!" "작가들 유치 뽕이네." (SBS 파워FM 두시 탈출 컬투쇼, 컬투), "개인적으로 이런 얼굴(송지선 아나운서) 좋아해요. 그런데 여자가 7살 많으면 애 데리고 논 거야(KBS Joy 엔터테이너스, 성대현)" 등 저급한 언어를 사용해 징계를 받는 일이 부지기수다.
물론 상당수 B급 문화는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에너지와 실험정신으로 주류문화에 신선한 영향을 줘 새로운 문화흐름을 형성해온 순기능이 있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는 "변두리 문화, 사회가 지닌 문화적 엄숙주의에 대한 반발로 주류에 비판적인 B급 문화가 활개를 쳤는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젊은 세대는 물론 기성세대들까지 SNS와 결합된 B급 문화를 마치 첨단 디지털 트렌드인 양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이를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게 이번 총선에서 보인 민주통합당의 행태다. 민주통합당은 젊은 표심을 잡겠다며 전형적인 막말 B급 폴리테이너(정치오락꾼)인 나꼼수 진행자들과 손을 잡았다. 어두컴컴한 B급 문화를 주류의 자리로 끌어올린 것이다. 검증은 물론 정제나 여과과정 없이 덥석 집어든 결과는 참담했다.
전문가들은 B급 문화가 주류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방향으로 정제돼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야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 이 교수는 "(최근 김용민 막말 파문을 겪은 한국사회에서) 문화가 탈권위적인 데서 다시 기본을 지키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한국사회의 자정능력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