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7년째 호황행진 “지구촌경제 호령”/미국경제

◎저물가­저실업­고수익 동시 달성­본지특파원이 진단하는 성공비결과 전망/차·컴퓨터·철강은 세계장악 “20년간 불황없다” 예상도/80년대 무역적자 눈덩이에 위기감/물가잡기·계열사­인원축소·M&A/정부·기업·근로자 뼈깎는 회생노력/91년이후 경쟁력제고 평균2% 성장한국을 비롯, 동남아 경제권이 침체의 수렁에 빠져 있는 가운데 세계 최대경제권을 이루고 있는 미국은 7년째 장기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저물가, 저실업율, 높은 기업 수익율을 동시에 달성한 미국 경제는 지난 1·4분기 5.9%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율을 기록, 개발도상국보다 빠른 속도로 21세기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다. 지난 80년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며 총체적 위기에 빠졌던 미국경제가 화려한 재기에 성공한 비결과 전망 등을 특파원 현지취재를 통해 살펴본다.<편집자주> ▷7년째 지속되는 장기호황◁ 세계 최대의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를 다녀보면 마치 폐허를 지나가는 것 같다. 세계 제일의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 모터스(GM) 본사주변은 마치 슬럼가와 같다. 그러나 GM 본사에서 자동차로 30여분쯤 떨어진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에는 요즘들어 재개발이 한창이다. GM도 디트로이트 도심에 번듯한 새본사를 건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80년대 중반 2차대전 승전국인 미국은 패전국 일본과 독일과의 경제전쟁에서 역전당할 조짐이 역력했다.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빅스리가 밀리면서 「미국은 끝났다」는 위기감이 휩쓸었다. 일본 기업이 뉴욕의 록펠러 빌딩을 사들이고, 미국의 자존심에 비견되는 컬럼비아 영화사를 매입했다. 그러나 90년대 시작과 동시에 일본에 밀렸던 미국의 자동차·컴퓨터·기계·철강 등 주요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일본이 저성장 또는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들었을때 미국은 안정된 성장을 거듭하며 호황으로 돌아섰다. 91년초 경기 저점을 통과한후 연평균 2%를 웃도는 성장율을 지속했고, 올 1·4분기엔 5.9%의 고속성장을 기록했다. 이 성장율은 10년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90년대의 호황은 물가가 안정된 가운데 고용 증대를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60년대의 저물가­고도성장에 비견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로버트 솔로우 교수는 『현재의 경기를 전후 60년대의 경제와 비슷하거나 더 좋다고 할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사정은 94년부터 크게 개선돼 실업율은 미국에서 완전고용 수준이라고 일컫는 6% 이하로 떨어졌고, 지난 5월에는 4.8%까지 하락했다. 23년만에 최저의 수준이다. 80년대에 8%를 넘었던 물가도 91년 이후 연평균 3% 이하로 떨어졌다. 임금도 80년 이후 근로자들이 과도한 임금인상보다는 고용안정을 중시함에 따라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임금 상승율도 90년 이후 연평균 3%로 떨어졌고, 올 1·4분기엔 2.4%로 에 불과했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미국은 전후 경제적으로도 세계를 리드했었다.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정체를 거듭했지만, 미국은 공산권 붕괴와 동시에 다시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이다. ▷경제호황을 이끈 요인◁ 지난해 9월 뉴욕 일대의 케미컬 은행 지점의 간판이 일제히 내려가고,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간판이 올라갔다. 자산기준 미국내 랭킹 4위인 케미컬 은행이 6위인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인수했지만, 간판은 인지도가 높은 체이스맨해튼의 것을 쓰기로 한 것이다. 두 은행은 합병을 통해 6백12개의 지점중 비슷한 지역에 있는 1백개를 폐쇄하고, 전체의 16%에 이르는 1만2천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새로 탄생한 체이스맨해튼은행은 미국경제가 경쟁력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단행한 다운사이징과 인수 및 합병(M&A)를 동시에 수행했다. 미국의 장기 호황은 기업, 근로자, 정부 등 경제주체 모두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기업은 과감한 감량경영과 M&A, 조직개편, 정보화를 추진했고, 근로자는 임금인상보다는 고용안정을 중시, 협조적인 노사관계를 이룩했다. 정부는 사회보장 지출을 과감히 줄여 재정적자를 감소하는 동시에 과감한 행정규제 완화를 단행했다. 미국 기업들은 경쟁력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뼈를 깎는 아픔을 겪었다. 생산성과 관계없는 기구를 과감히 축소하고, 대대적인 인원정리를 단행했다. AT&T는 전체인원의 30%에 해당하는 12만3천명, IBM은 35%인 2만2천명, GM은 29%인 9만9천명의 직원을 각각 회사에서 떠나보냈다. 보잉도 37%인 6만1천명, 시어스로벅도 5만명(15%)의 직원을 해고했다. 기업 구석구석에 배여있던 군살을 뺀 결과 기업은 상당한 비용절감효과를 얻었다. 크라이슬러는 다운사이징과 리스트럭처링을 통해 40억 달러를, 제록스는 제조비용의 20%를, 테네코는 1백일만에 3억 달러를 절감했다. 뒤뚱거리던 코끼리가 춤을 추기 시작했고, 기업은 새로운 활력으로 움직여 나갔다. 90년대 미기업계에 바람처럼 불어닥친 M&A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단순히 기업 규모를 키워서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 아니라, 합병을 통해 경영효율과 수익성을 높이려는 것이었다. 보잉과 맥도널 더글러스의 합병, ABC방송과 월트디즈니의 합병, 전화회사 및 은행의 합병 등은 이런 맥락에서 진행된 통합이다. 기업의 업종전문화도 두드러진다. 80년대 문어발식 업종 다각화를 추진한 결과 경영수지가 크게 악화됐던 미국기업들은 90년대들어 부실 자회사를 대거 정리했다. 그리고 경쟁력 있는 분야에 전문화해서 전문업종의 경영에 전념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들이 할부금융자회사를 일제히 매각한 것이라든지, 백화점업체인 시어스&로벅이 올스테이트보험를 매각한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연방정부도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세금을 올리기보다는 인원과 기구를 감축함으로써 경비를 절감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노동자쪽에서도 노동조합을 해체시켜 가면서 노사협조를 약속했다. ▷호황은 언제까지 가나◁ 91년 4월부터 시작된 이번 호황은 7월로 6년 4개월(76개월)을 넘었다. 미국 경제에서 가장 길었던 호황은 80년대의 호황으로 92개월이나 진행됐다. 따라서 현재의 호황이 내년말까지 지속되면 최장기 호황의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현재로선 내년말까지 불황이 닥쳐올 것이라고 단정하는 경제인인 아무도 없다. LA타임스가 최근 경제학자·기업경영인·정부관리·인구통계학자 등 각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번 호황은 앞으로 20년간 더 진행될 것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지난 60년대의 호황을 훨씬 능가하고 미국 경제는 다른 어느때보다 균형잡히고 경쟁력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솔로우 교수는 『미국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활력있게 움직여 나가고 있다』며 『갑작스럽게 침몰할 우려가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기업인들은 경제학자보다 낙관적이다. 사라리그룹의 최고경영자 존 브라이언과 같은 사람은 아예 미국경제에서 호황과 불황이 교차하는 경기사이클이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경제인들이 불황을 걱정하지 않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중앙은행의 보수적인 금리정책이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기과열을 진정하는데 적절한 역할을 하고 있고,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수립이후 국제교역량이 늘어 시장이 확대되고있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동종 기업들 사이에서도 무리한 설비투자를 통한 과당경쟁을 자제하고, 생산시스템을 개선함으로써 수요과 공급을 맞춰나가는 것도 불황을 피해나가는 요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 어느 국가의 기업보다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미국의 장기호황을 전망하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 지난 90년초 뉴욕증시의 기준 지표가 되는 다우존스 공업평균지수(DJIA)는 2천대에 머물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8천대를 넘어섰고, 빠르면 올연말, 늦어두 내년초에는 1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증권투자자들은 낙관하고 있다.<뉴욕=김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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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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