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자본주의 문명의 폭력성 섬뜩하게 그려

■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박범신 지음, 문예중앙 펴냄)


주인공 '나'는 4년간 수감돼 있던 교도소에서 출옥한 뒤 노숙자로 10년 넘게 떠돌다 고향 도시로 돌아온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무허가 판잣집이 사라진 자리에는 음산하고 위압적인 5층짜리 원룸 빌딩 '샹그리라'가 들어서 있다. 샹그리라에 사는 인물들과 그들이 벌이는 천태만상은 자본주의 문명의 남성적 야수성과 잔혹성의 표본이다. 샹그리라의 주인이자 그 도시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배하고 있는 이사장은 '악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다. 그의 비정한 행각을 목도하고 잔인성을 깨달아 가는 동안 나에게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나의 손바닥에 숨어 있던 '말굽'이 모습을 드러내고, 위기감과 분노에 빠지는 순간마다 걷잡을 수 없이 자란다. 급기야 나는 그 말굽으로 희대의 연쇄 살인에 버금가는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한 대에 1,000만원인가를 내고, 그것도 부하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야구방망이로 사람을 때렸다는 어느 재벌 2세의 실화에서 이 소설은 시작됐다"는 저자는 "쾌락을 위해 돈을 주고 사람을 향해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시대에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섬?하게 느껴지면서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줄기는 자본의 독재가 지배하는 사회 폭력의 구조화와 그 속에서 욕망의 노예로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해가는 과정과 '악의 화신' 이사장이 인간성이 말살된 기형적인 괴물이 되기까지를 추적하는 과정에는 독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스스로 무한 증식하는 폭력의 속성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가 깔고 앉은 (자본주의라는) 장판 밑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고 싶었다. 안락하고 화려하고 번들한 자본주의는 사실 겉모습에 불과할 뿐 더 위험한 것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걸 폭력성이라는 코드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변(辨)은 그래서 더욱 섬뜩하면서도 진실되게 들린다.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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