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물 건너간 조선의 여행자들, 들뜸보다 두려움이…

■조선사람의 세계여행(규장각한국학연구원 지음,글항아리 펴냄)<br>통신사로 日에 간 김지남, 배 표류해 中여행한 최부 등<br>15세기서 식민지 시기까지…다양한 세계여행기 소개


1928년 파리에서의 나혜석의 모습. 그는 1년 8개월 동안 15개국의 나라를 여행했다.

최부 일행이 당도했던 중국 절강성 항저우의 대운하는 오늘날도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사진제공=글항아리

"사당에 참배하고 아내, 어머님께 가서 작별을 고했다. 어머님께서는 눈물을 머금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신다. 나 역시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어 슬픔을 억제하기 어렵다. 아이들을 돌아보니 큰 아이는 미리 한강가로 나갔고, 다른 아이들은 피해 숨어서 슬피 우느라 불러도 와서 보지 않는다. 어머님의 마음을 위로해드리며 눈물을 머금고 다녀오겠노라 고하고 문 밖으로 나서니 현과 순 두 아이는 내 옷자락을 붙잡고 슬피 울고, 아내는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운다. 옷을 뿌리치고 말 위에 올라 길을 떠났다"(본문 88쪽) 대역죄를 짓고 유배 가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1682년 숙종 때 역관의 임무로 길을 떠나는 통신사 김지남의 눈물겨운 이별 장면이다. 조선시대 여행은 지금과 달랐다. 일상을 벗어난다는 '들뜬'기분 보다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두려움'이 앞섰다. 자발적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떠나는 여행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행은 있었다. 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공무 여행'뿐 아니라 우연히 배가 표류해서 여행하게 됐던 '자유 여행', 말ㆍ모시ㆍ인삼 등을 팔러 간 고려 상인의 '무역 여행' 등 종류도 예상 외로 다양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펴낸 이 책은 15세기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근 600년간 이뤄진 다양한 세계 여행을 소개한다. 다양한 지도와 그림 및 사진이 과거 사람들의 여행을 생생하게 안내해준다. 책에 실린 12가지 여행 이야기 중 가장 흥미진진한 여행담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려고 제주도에서 나주를 향해 떠났던 최부 일행의 배가 표류하면서 본의 아니게 중국 여행을 하게 된 이야기다. 1488년 제주도에서 출발했던 그는 14일간의 표류 끝에 중국 남부에 불시착한 후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조선으로 되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그는 6개월간 중국 곳곳을 여행하게 된다. 고난 끝에 한양에 다시 도착한 그는 성종에게 그동안의 일기를 써 바쳤고 이것이 그의 여행 기록이 담긴 '표해록'이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조선통신사로 떠났던 김지남이나 우연한 기회에 '자유 여행'을 하게 된 최부의 이야기와는 달리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난 여성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중국으로 진상된 여성들을 의미하는 '공녀'의 이야기로, 원나라에 팔려간 여성들만 2,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조선시대 세종과 태종 때는 일곱 차례 114명의 공녀가 보내졌다. 책은 특히 여운형의 모스크바행, 이순탁 연희전문교수의 세계여행, 조선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여성 나혜석 구미 여행 등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 해외여행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면서 조선인이 해외 문물을 접하며 놀라움과 자괴감을 동시에 맛봤다고 소개한다. 책은 조선시대의 삶과 문화를 일반 대중들이 알기 쉽게 재조명해 내고 있는 '규장각 교양총서'시리즈 중 하나로 앞으로 '세계 사람의 조선 여행', '조선 사람의 조선 여행' 등의 출간이 예정돼 있다. 2만 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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