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위기의 나라살림] <중> 장밋빛 전망에 국고가 빈다

저성장에 번번이 세수 펑크… 경제체질 맞춰 산출공식 다시짜야

올 성장 예상과 달리 3.7% 그쳐 세수 부족 10조 훌쩍 넘어설 듯

재정절벽 막기 위한 고육지책… 불용예산으로 '돌려막기' 반복


세수가 계획보다 8조5,000억원이나 덜 걷힌 지난해. 정부가 올해 초 쓰일 돈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 예산안에 잡혀 있던 금액을 집행하지 않은 불용액이 18조원을 넘었다. 이전 3년간 평균치(5조7,000억원)의 3배가 훌쩍 넘는 수준이다. 세수가 계획대로 들어오지 않을 경우 다음 해 집행해야 할 재정사업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재정절벽'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예산 불용액을 대규모로 만들어 다음 해로 넘긴 것이다.

세수 부족이 10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내년은 올해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세수펑크 규모도 규모지만 경기 부양을 위해 내년 지출을 올해보다 20조원 넘게 늘린 '슈퍼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예년보다 세수 결손은 더 늘어나는 만큼 내년 초에 써야 할 돈이 더 많아졌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내년 경기가 상저하고(上低下高)로 예상되는 만큼 상반기에 최대한 재정 집행을 많이 하는 쪽으로 방침이 서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근 각 부처는 불용예산 규모를 파악하는 등 세출 절감 방안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매년 반복되는 장밋빛 전망…세수펑크 불감증=정부의 이 같은 '돌려막기'가 2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은 경기 상황이 녹록하지 않은 탓이 크지만 정부가 경기 전망을 너무 장밋빛으로 본 측면도 적지 않다. 경기 상황은 불투명한데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에 근거해 세수 추계를 짜다 보니 번번이 세수펑크가 반복되는 상황이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세수 추계의 근거로 삼는 경제지표는 경상성장률이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물가지수인 GDP디플레이터를 더한 수치다. 하지만 최근 경기는 정부의 예상처럼 빠르게 회복되지 않고 있고 물가도 24개월째 1%대에 머물면서 경상성장률 전망치는 번번이 빗나갔다.


이에 따라 2012년 내국세는 전해 세웠던 예산안의 세입(205조8,000억원) 대비 2조8,000억원이 덜 걷혔다. 당초 예상했던 7.6%의 경상성장률이 반 토막에 못 미치는 3%에 그치면서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8조6,000억원의 세수 결손을 기록한 지난해에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해 6.9%의 경상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는 3.7% 성장하는 데 그쳤다. 장밋빛 전망은 올해도 이어졌다. 국세로 216조5,000억원이 걷힐 것이라는 예상이 맞으려면 우리 경제가 경상성장률로 6.5%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올해 경상성장률은 실질성장률 전망치(3.7%)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면서 세수 부족이 10조원이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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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장밋빛 전망 탓에 3년 연속 세수 결손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내년 우리 경제가 6%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른 국세 수입은 221조5,000억원. 올해 예상되는 국세수입(국회 예산정책처 추정 205조8,000억원)보다 7.6%(15조7,000억원)나 늘어난 수준이다. 전망이 틀리면 또다시 세수펑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세수펑크 불감증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증세 요구를 잠재우려고 일부러 낙관적 전망치를 이어가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정전문가는 "관리재정수지가 MB 시절부터 7년 연속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수 전망까지 보수적으로 하면 재정수지 전망도 덩달아 나빠질 수밖에 없다"며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보수적으로 짤 경우 증세 요구가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저성장 고착화…세수전망 틀 통째로 바꿔야=장밋빛 전망이 이에 따른 세수 부족이 재정절벽을 불러오고, 다시 불용예산이 늘면서 경기를 부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자 세수 전망의 틀을 아예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저성장 기조라는 현재 경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맞춘 새로운 세수 추계 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상 재정 당국은 세수 전망의 GDP탄성치(경상성장률을 조세증가율로 나눈 수치)를 1% 내외로 잡는다. 경상성장률이 1% 증가하면 약 2조원의 세수증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본다. 2013~2017년 중기 국세수입 전망에서 정책당국이 활용한 GDP탄성치도 1.1%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 같은 기존의 공식이 전혀 들어맞지 않고 있다. 국세수입의 기반이 되는 내수가 꽁꽁 얼어붙은 탓이다. 내수 침체로 전반적인 경기둔화가 이어지면서 기존보다 세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만큼 세수 전망의 틀도 바뀔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가격이 올라야 세수가 늘어나는 부가가치세는 국세 수입의 4분의1 정도"라며 "저성장·저물가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따라 저절로 세수가 늘어나는 일은 이제 옛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경상성장률이 1% 오르면 세수가 2조원 늘어난다는 과거의 컨센서스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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