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키코 中企 은행 탐욕에 두번 울다] 끝모를 재판에 고금리 구제금융까지… 피해 기업 속탄다

항소심도 130여건 1년 이상 질질 끌어 회사는 이미 도산 "이겨도 지는 싸움"<br>유동성 긴급지원 한다던 패스트 트랙은 이자율 두배 이상 높아져 부담 '눈덩이'

키코(KIKO) 피해기업 사장들이 지난 2010년9월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피해기업들은 그동안 정부로부터 받은 훈·포장, 표창장, 수출의 탑 트로피 등을 청와대에 반납하겠다고 밝히고 키코 피해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사진제공=키코 공대위



#직원 10명의 소규모 섬유업체 A사를 운영하던 조모 사장은 지난해 5월 자기 손으로 폐업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키코(KIKO) 사태 이후 직원 수를 3명으로 줄여야만 할 정도로 힘겹게 회사를 유지하기를 4년째. 지난해 서울지방법원에서 키코로 인한 손실금 12억원 중 절반인 6억원을 신한은행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이끌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한은행이 강제집행 정지를 해 배상금 지급을 외면한 탓이다.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사업을 접고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서 공장 관리자로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설 연휴 첫날인 지난달 21일. 매출 90억원대 섬유업체 B사를 운영하던 임모 사장은 쓸쓸히 눈을 감았다. 지난 2007년에 가입한 키코로 휘청거리다 2010년 11월, 1심에서 피해금액 15억원 중 30%인 4억5,000만원을 외환은행이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회사는 문을 닫은 뒤였다. 그마저도 외환은행이 강제집행 정지와 함께 항소를 해 눈을 감는 순간까지 피해보상액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은행의 횡포와 끝날 줄 모르는 재판, 그리고 금융당국의 생색내기식 고금리 구제금융으로 키코 피해 중소기업들이 세 번 울고 있다. 특히 키코 공동대책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항소를 하더라도 기업들에 1심 결과에 따른 보상액이라도 먼저 지급했더라면 기업인들의 몰락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은행이 기업들의 사정을 알면서도 철저히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이겨도 지는 싸움=13일 키코 공대위 및 중소업계에 따르면 현재 법정에서 키코와 관련해 다툼을 벌이고 있는 기업은 140여개사에 이른다. 이 중 36개 업체는 상품판매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을 듣지 않았다는 점이 인정돼 1심에서 10~50%의 금액을 은행이 배상하라는 일부 인용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사건이 고등법원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렵게 1심에서 일부 승소를 이끌어낸 기업들은 은행들의 지급 거부로 피해금액을 보상받지 못했다. 서울고법의 한 관계자는 "가집행에 대한 강제집행 정지는 항소를 하기 위한 필수절차가 아니라 은행들의 선택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의 한 관계자는 "강제집행 정지 요청은 아직 소송이 다 끝나지 않은 상태여서 하위법원의 판결만으로 비용을 지급하기 어려워 전체 은행권 차원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소송 지연에 속타는 중기=법정싸움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는 키코 관련 사건은 130여건으로 상당수가 1년 넘게 판결이 늦어지고 있다. 특히 민사18부는 이미 대법원까지 간 수산중공업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재판을 연기(추정)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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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측은 키코 관련 판결은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기 때문에 최종 선고까지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2심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건이 있더라도 대법원 판결을 서두르기는 어렵다" 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결론을 짓고 싶어하는 기업들은 기약 없는 재판일정을 바라보며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고금리' 구제금융에 허덕=2008년 당시 금융감독원에서 연쇄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제시한 긴급 유동성 지원책인 '패스트트랙(Fast Track)'도 중소기업들을 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고금리 대출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키코 사태가 터지기 전 7%대의 대출금리를 적용받던 매출 130억원대의 한 중공업업체는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이자율이 17%까지 뛰어올랐다. 한 자동차부품업체 대표는 "원래 3%대를 적용받았지만 패스트트랙에서는 이자율이 2배 이상 높아졌다"며 "회사는 이제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아직 패스트트랙 원금은 다 갚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키코(KIKO)=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정해둔 환율에 약정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환율이 900원대에서 1,400원대까지 폭등하며 기업들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키코로 피해를 입은 업체 수는 전국 738개, 피해규모는 3조2,247억원으로 추정된다.

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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