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기업·상품진출 교두보에 무보수 외교사절 역할/한인공동체 형성위해 정보네트워크 구성 공유 등 본국현지 쌍방향 관계정립 필요우리 한민족처럼 세계 각국에 골고루 퍼진 민족도 흔치않다. 외무부 당국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해외에 거주중인 우리 동포는 1백40여개국에서 모두 5백20여만명에 이른다. 우리 민족의 해외이주 현황에서 특히 주목할 사실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등 세계 4강국에 각각 50만2백만명씩의 동포가 집단 거주하고 있다는 점. 세계화·개방화가 급속도로 진전될 21세기, 민족의 염원인 통일이 수년내로 임박한 시기를 맞아 세계 각국에 고루 퍼진 우리 동포들의 역량을 결집시켜 「한민족경제권」을 구축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5대양 6대주에 퍼진 우리 민족이 힘을 모을 경우 동남아 화인(중국국적 화교포함)들이 중화경제권 발전의 견인차가 된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모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신문은 현지르포 연중 기획시리즈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들꽃처럼 강인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5백20여만 재외동포의 현주소와 그들의 경제활동 상황, 모국과의 교류실태 등을 점검하고 한민족경제권의 가능성을 심도있게 짚어본다.<편집자주>
중국 요녕성 심양, 길림성 연길과 장춘등에서 손꼽히는 조선족기업들은 하나같이 한국기업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요녕성 조선족기업가협회장을 맡고 있는 삼룡그룹(회장 김희복)과 성달그룹(회장 성백소)은 매출의 90% 가량을 한국시장이나 한국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10원(한화 약 1천원)짜리 한국산 생활용품 전문매장을 설치해 심양 백화점업계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범아상하(회장 김영준)는 그랜드백화점에서 근무했던 송대승씨를 이사로 영입, 매장을 아예 한국식으로 꾸몄다.
길림성 장춘의 장백산그룹(회장 이규광)은 국내 귀뚜라미보일러, 한성울트라텍과 손잡고 기름보일러, 정수기사업을 벌이고 있다. 연변대우호텔에 화재경보기와 소방시스템 등을 납품한 연길지능설비창도 한국기업과 합자를 모색하고 있다.
『오는 2002년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GDP) 세계 1위로 부상할 것이라는 중화경제권과 경제대국 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한민족의 생존전략은 남북한 인구의 7%를 넘는 해외 한인들의 역량을 결집, 활용하는 방법외엔 없습니다.』 30여년간 해외교포문제연구소를 꾸려온 이구홍 소장은 재일교포의 자금과 재미교포의 두뇌를 2백만명에 달하는 재중교포와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21세기형 세계화전략, 다시말해 「한민족경제권」구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95년 1월 현재 재외동포는 1백40여개국 5백23만명에 달한다. 중국, 이스라엘(1천5백만명), 이탈리아(5백50만명)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 규모다. 하지만 본국민 인구에 대한 비율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재외동포는 국적을 불문하고 외국에 거주하는 우리 민족을 일컫는 말로 우리 국적을 갖고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재외국민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한국의 재외동포는 2천8백만명에 달하는 화인보다 규모면에서 열세이나 진출국 수에서는 중국(90여개국)보다 50여개나 많다. 화교·화인은 동남아와 북미, 유대인은 미국과 동유럽, 일본계는 미주에 집중돼 있는 편이다.
해외동포는 전체의 94.5%인 4백94만명으로 남북한 인구의 7%를 넘는다. 사업 취업 유학 등을 위해 일시 체류중인 사람은 29만여명으로 5.5%에 달한다.
해외동포들은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산업기술 등을 전수해주고 한국상품과 기업의 해외진출 교두보로, 우수한 인적 자원의 공급원으로 충실한 역할을 수행해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은 본국송금과 방문으로 연간 수십억달러를 쏟아붓고 해외영토 개척자, 한반도 통일과 세계화의 첨병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또 정부의 지원없이 몸으로 부딪치며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전파해 한국과 한민족에 대한 이해심을 높이는 무보수 외교관, 문화사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외동포의 실상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이에 바탕한 재외동포정책의 부재로 이같은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재외동포들은 자녀교육, 조직의 분열, 1세 이후세대의 정체성 상실 등 적지 않은 문제점에 직면해 있다.
이광규 서울대 교수(인류학과)는 『재외동포들이 쉽게 모일 수 있는 소공간을 확보하고 공동관심사에 관해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협력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편 한민족공동체의 형성·발전을 위한 교육·문화정책을 꾸준히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지화된 한인들이 나름대로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민족네트워크의 이론화작업을 통해 정체성의 다원화를 인정하는 분위기 확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정보의 보고로서 인터넷등을 활용한 정보네트워크를 구축, 재외동포와 한국간 쌍방향적인 관계정립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재외동포 사업자간 정보교환과 무역활성화 등을 위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해외한인무역협회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코리안 네트워크 구축사업은 작지만 큰 출발점이 될 것이다.<장춘=임웅재 기자>
◎재외동포정책과 문제점/「재외동포재단」 발족하지만 실권없어 유명무실 단체 전락우려/「교민청」 등 전담기구마련 교포규모 걸맞는 대우 해줘야
정부는 여러 부처로 분산된 재외동포 관련사업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전개해 나가기 위해 이달중 재외동포재단을 발족할 예정이다.
우선 45개 실무부서, 3040명선의 소규모로 출범할 이 재단은 재외동포 관련 각종 교류·조사 및 교육·문화·홍보사업 등을 수행하게 된다.
정부와 재단은 우선 재외동포들이 거주국 사회내에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존경받는 모범적인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또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민족교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되 나라마다 이민형성 과정이 다르고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이 다른 점을 감안, 지역·세대별로 실정에 맞는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해외교민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재외동포재단이 또 하나의 유명무실한 단체로 전락, 교포들의 실망만 더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재외동포단체 지원과 재외국민 보호업무는 외무부, 무역투자 등 경제분야 유대강화는 통산부, 해외이주자의 이주비와 국내재산 처분대금의 반출 등은 재경원, 민족교육은 교육부 식으로 부처별로 나뉘어진 업무체계를 그대로 둔채 재단 하나만 달랑 설립한다고 하루아침에 뭐가 크게 달라지겠느냐는 것.
국무총리 산하 재외동포정책위원회 1차회의때 일부 부처들이 『무엇때문에 번거롭기 짝이 없는 교포재단을 만드느냐』고 비판한 것도 자기들의 업무를 재단에 빼앗길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이에따라 재단설립의 목적이 불분명해지고 그렇찮아도 영사업무를 소홀히 해온 외무부 산하재단이 됨에 따라 출발도 하기전에 재단 무용론을 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당초 교민단체들은 재외교포의 규모에 걸맞는 지원을 해 주고 여러 부처에 분산된 재외동포 지원업무를 종합조정 시행할 수 있는 교민청같은 전담기구 설치를 요구했었다.
일부에선 평통자문위원회, 한민족축전, 교육부의 교포지원사업 등 산재한 교포관련 업무를 재단에 몰아줘야 한다고 주장한다.<임웅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