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43> 관계 정리의 미학


“정말 죽고 싶더라고요. 내가 그런 일에 휘말릴 줄은 몰랐습니다.” 누구나 흠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인간적인 실수, 때로는 원칙을 거스르는 잘못을 할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만, 무엇보다 같이 죄를 저질렀거나 그보다 더한 사람이 책임을 추궁하면 억울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복합적으로 다양한 사람들끼리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 속에서 ‘적반하장’식으로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아 손해를 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무엇인가 심상치 않게 느껴집니다. 오히려 그 흑막에 더 좋지 않은 것들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이죠. 이 세상에 완벽하게 적대적인 관계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계는 그 사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복잡하게 얽혀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국면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서로 약점을 잡히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군가가 이해관계를 이유로, 또는 상황이 바뀌어서 서로 관계를 접게 될 때입니다. 새로운 길을 찾아 상대방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오히려 앞장서서 초를 치고 그 사람에 대한 악평을 퍼뜨릴 때 비극이 벌어집니다. 기자에게 ‘죽고 싶다’고 말한 사람도 조직 안에서 그렇게 뒤통수를 맞은 사람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가자고 해놓고 ‘축복해 주겠다’고 말하면서 정작 소문을 내고 욕을 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사디스트’, 즉 가학성 음란증 중독자라고 하는가 봅니다. 오히려 좋지 않은 인연은 과감하게 놓아주고 잊어버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욕을 하고 화를 내가면서 그에게 손해를 입히는 모양새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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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관계가 해소될 때는 조금 ‘쿨’해져야 합니다. 어차피 첫 단추가 잘못돼서, 또는 코드가 안 맞아서 어긋나는 사이가 많습니다. 그럴 때 상대방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화를 내기보다는, 과감하게 지나온 인연을 정리하고 새 출발 할 것을 응원해 주는 게 낫습니다. 정당이든, 대학이든, 회사든 무수하게 관계를 맺고 정리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조금은 더 대범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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