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은 전방위 상호 협력 탄력… 역내 경제통합 선도적 역할 가능
북핵문제 北·美가 열쇠 쥐고있어 北 압박보다 자율적 변화 유도해야
"앞으로 주요2개국(G2)의 관계는 중국이 현재의 발전추세를 이어갈 수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계속 발전한다면 미국도 일본도 중국의 지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는 곧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의미합니다." 태평양에서의 일본·미국 합동훈련에 대응해 중국이 벌였던 동중국해 대규모 실탄사격 훈련 마지막날인 지난 2일 진징이(61·사진)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를 만났다. 그는 조선족 출신으로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동북아·한반도 전문가다. 진 교수는 중국과 일본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에 대해 "중일 간에 군사적 충돌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재앙이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며 양국의 갈등을 '기싸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일본의 군사행동은 경제상황이 내리막을 걸으며 쌓여온 좌절과 분노가 밖으로 표출된 것"이라며 "중국의 정치·경제적 부상 이후 아직 일본과의 관계가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갈등의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동북아 정세의 중요 변수 중 하나인 한반도 문제에 대해 진 교수는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절대적 우위에서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자세를 버리고 북한이 자율적으로 변할 수 있도록 한국이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이 바라는 한반도의 미래상에 대해 갈등과 대결의 '지정학적' 모델이 아니라 협력의 모델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미국·일본·한국·북한 등이 얽힌 동북아 정세가 매우 복잡합니다.
△동북아 갈등의 핵심은 중미관계입니다. 중미관계가 잘 풀려야 다른 갈등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신흥대국이 기존 대국의 지위에 도전하던 역사 패턴을 밟지 않으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이 자국의 지위에 도전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계속 중국을 흔들면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입니다. 현시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미국이 일본을 지원함으로써 중일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입니다.
-중미관계가 신형 대국관계가 아닌 패권다툼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에 맞서 중국은 개도국 연합으로, 경제적으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의 카드를 꺼냈는데요.
△패권이란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지위를 말합니다.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차 강조합니다.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반대하는 것은 미국과 패권다툼을 벌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평화적 공존의 신형 대국관계를 이루자는 것이지요. RCEP는 동남아국가들이 먼저 주장했습니다. 중국은 지역협력에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참여하는 것이지 미국에 대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중미관계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새로운 틀을 만드는 단계입니다. 협력하면 윈윈이 되고 대결로 나가면 양쪽 모두 불행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미관계가 다시 협력 모델을 찾을 수 있을까요.
△부상하는 중국과 기존 대국이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과도기는 길지 않을 겁니다. 중미는 과거 미국과 소련과 달리 협력의 여지가 많습니다. 경제는 물론 국제정치 질서에서도 중국과 미국은 협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9·11테러 때 6자회담이 탄생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미국이 중국을 도전하는 나라로 생각하지 않고 테러라는 적에 대응하는 협력 파트너로 봤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중미·중일관계는 중국의 발전에 달려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멈춘다면 다른 얘기가 되지만 중국이 추세대로 발전해간다면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일갈등이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결국 한쪽이 손을 들어야 끝나는 문제인가요.
△중일 간 갈등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일본을 넘어서면서 증폭됐습니다. 역내경제를 이끄는 선도국임을 자부해온 일본은 중국에 뒤지면서 좌절감과 초조감을 가졌고 역학관계의 변화를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중국이 계속 지금 같은 추세로 일본과의 격차를 벌리며 나아가면 일본도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는 11월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과 아베 신조 총리가 만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양국 정상이 악수 정도는 할 수 있겠죠. 예의는 갖출 겁니다. 하지만 정상회담은 어렵습니다. 물론 앞으로 남은 기간에 급진전될 수 있지만 군사훈련 등으로 부딪히는 상황에서 쉽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이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대국의 품위를 보여주고 메시지를 던져야 하지 않겠냐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현시점에서 정상회담을 바라는 건 일본뿐입니다.
-시 주석의 방한 이후 정치·경제적으로 한국과 중국이 더욱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하지만 한국은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존하는 한계를 가졌습니다.
△시 주석의 방한은 단순한 경제관계로만 인식하던 한중관계를 진정한 의미에서 전략적동반자관계로 승격시켰습니다. 양국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외교·군사·문화·사회 등 모든 면에서 전방위적인 협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양국의 이러한 협력관계는 혼돈을 겪고 있는 동북아에서 가장 안정된 요소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양국관계는 일방적 의존이 아니라 상호의존입니다. 양국이 연내에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하면 양국관계는 더욱 탄력을 받아 역내 경제통합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 문제로 질문을 이어가겠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협력의 유일한 협력체인 6자회담이 공전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북핵 문제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북한의 생존전략이 충돌하면서 발생했습니다. 북핵은 북미가 게임을 하면서 부풀려온 것입니다. 결자해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북핵을 해결할 성의가 없어 보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내내 손을 놓고 있습니다. 북한 역시 양보할 능력과 여지가 없습니다. 6자회담이 재개되려면 미국과 북한이 서로 한발씩 물러서야 합니다. 관련국가들은 북한뿐 아니라 미국도 설득해야 합니다. 제재만이 만능은 아닙니다. 북한의 안보 우려도 해소해야 합니다. 남아프리카 등의 나라들이 핵을 포기한 것은 안보 우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북한 핵에 대한 전략을 바꿀까요.
△북핵과 관련해 외견상으로는 중국이 앞에 나서고 미국은 뒤로 물러나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중국이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이 여전히 북미 간에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핵은 이미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힘을 실어주고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빌미를 제공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중국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원인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 바라듯이 중국이 북한에 결정적인 제재를 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국은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에 변화가 없습니다.
-중국이 원하는 한반도의 청사진은 어떤 모습일까요.
△중국은 통일한반도가 지난 시대의 갈등과 대결에서 벗어나 역내 경제협력에서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한반도 통일은 중국의 동북지역 발전에 필요한 개방과 발전공간을 확보해줍니다. 동북아 경제협력은 동남아 지역의 경제협력과 함께 중국 발전의 두 번째 날개가 될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중국이 추진하는 동남아 지역과 서부 지역을 잇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과 접목되면 양국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것입니다.
조선족 출신 한반도 전문가… 남북 치우치지 않은 시각으로 한국전쟁 발발 원인 연구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