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포기', '달관'은 어울리지 않는 말...대학생들이 새로운 신촌 공동체를 꿈꾼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차없는 거리에서 연세대 마을학개론 수업 수강생들이 박흥표 서대문구 지역활성화과장과 함께 ‘차 없는 거리 전면 시행 시 활용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연세대 마을학개론 수강생

“사실 4년 넘게 신촌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신촌에 대해서 주인의식을 느낀 적이 없었어요. 대학과 지역사회가 단절돼 있는데 접점을 이룰 만한 공간을 만들어가면서 신촌을 변화시키고 싶어요”(장도경 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 4학년)

대학생을 중심으로 서울 서대문구 신촌(新村)만의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태동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서대문구청 지역활성화과가 주축이 돼 개설한 ‘마을학 개론’ 수업 수강생 38명을 통해서다. 올 봄 처음 열린 이 수업에서는 수강생이 모두 지역 활동가가 돼 △연세로 차 없는 거리 △연세대 앞 지하보도 △사회적 경제 △친환경 에너지 등 4개 부문의 문제를 파악, 해결책을 이끌어내는 일을 맡았다.


지난 4일 특별한 마지막 수업이 열렸다. 마을학개론 수강생들이 서대문구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한 학기의 결과물을 발표하고 소회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 것. 마을학개론 수강생들이 파악한 신촌이라는 지역은 두 가지 다른 의미를 가진다. 행정구역상 신촌은 1만 856개 가구에 인구는 2만 1,634명이 거주하는 서대문구 신촌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생활권역으로는 주로 연세대(3만 6,706명), 이화여대(2만 5,395명), 서강대(8,337명) 재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대학촌이다. 거주하는 사람과 생활하는 사람이 다른 신촌의 특성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실질적으로 생활하는 대학생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기 일쑤였다. 학생들은 신촌에서 자신들은 소비자에 불과했다고 자평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서대문구와 이태동 연세대 교수가 의기투합해 개설한 ‘마을학개론’ 수업이 연세대에서 빛을 봤다. 박흥표 서대문구 지역활성화과장은 “서울시에서 51억을 지원받은 연세대 앞 지하보도 사업에 주민 의견 반영을 위해 공청회를 열었는데 이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학생들이 아닌 건물주, 상인들만이 모이는 데서 문제의식을 느꼈다“며 “신촌 지역을 발전시키는 데 학생들의 목소리가 절실했다”고 설명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도 학생들이 내놓은 결과물을 사업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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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동안 수업은 교수가 가르치고 학생은 받아적는 강의실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신촌지역 활동가들과 토론하고 주민과 구청 관계자를 만나는 필드스터디로 이뤄졌다. 연세대 앞 지하보도의 활용방안을 고민했던 ‘연지’팀은 지역 주민, 상인, 학생, 구청의 의견을 듣는 데서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참여했던 홍다솜(문화인류학과 2학년)씨는 “처음에는 쉽게 이해관계자를 모아 공청회를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전에 제대로 된 이해관계자에 대한 설정이 없었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를 찾아내는 것부터가 첫 장애물이었다”며 “이해관계자 어느 누구도 참여의 필요성을 못 느낀 데서 또 좌절감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차근차근 이해관계자를 만났다.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민·관 거버넌스’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참여’에 주목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파편화된 신촌의 대학생들을 ‘밥’이라는 매개체로 묶어 사회적 경제 모델을 만든 ‘맛있는 신촌’팀의 장도경(스포츠레저학과 4학년)씨는 “‘참여’하면 정치가 떠오르고 부정적인 감정이 크게 들었기 때문에 참여하지는 않고 비판하는 것만 ‘쿨하다’고 여긴 게 사실”이라며 “이번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의견을 표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수업을 들으며 달라진 점을 전했다. 그의 팀은 그간 단절됐던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학생이 만나서 밥을 먹으며 교류를 하고 한끼에 7,000원으로 남은 돈으로는 쌀을 구입해 ‘미혼모들의 집인 애란원 등 취약계층에 쌀을 기부하기로 했다. 이들은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새롭게 정의를 내리기 시작했다. 대학생들도 일상에서 제 목소리를 내면서 ‘생활정치’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게 장씨의 설명이다.

학생들의 변화에 대해 이태동 교수는 “학생들이 한 명의 주민, 한 명의 시민으로서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된 것 같다”며 “일부러 교수로서는 큰 방향 외에는 세세하게 지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대학생들을 ‘포기’, ‘달관’ 등 무기력한 단어들로 표현하는 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어디에 이야기해야 할 지 모르고, 있다고 해도 어떻게 들려지는지 모르다 보니 젊은 세대들이 무기력감에 빠진다”며 “이번에는 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어떤 식으로 들려지는 지를 알게 해준 게 이 수업이었다”고 했다.

그는 마을학 개론의 ‘마을’을 두고 “지방의 마을이 아니라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있다는 의미에서의 마을”이라며 “앞으로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마을을 많이 만들어나갈 수 있었으면 하고 기대한다”고 했다. 이 수업에 참여한 김지은(심리학과 4학년)씨는 “이제부터 내가 참여해야 할 신촌 공동체의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며 “20년 전에 대학생과 주민이 신촌 공동체의 발전 방향에 대해 논하고 함께 축제를 열었던 ‘신촌문화축제 한마당’처럼 함께 할 수 있는 접점을 고민해봐야겠다”고 했다. 수업은 끝났지만 신촌 지역 활동가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데 학생들은 확신을 보였다. 학생들이 마을학개론 수업을 통해 내놓은 아이디어는 올해 말 ‘대학이 지역을 만날 때 : 신촌도시재생’이라는 책으로 출간된다.


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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