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입 관련 외환거래액 중 3분의1에 육박하는 3,400억달러가 역외탈세꾼의 단골 도주로인 '조세피난처'에 집중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역대 최대치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해외직접투자액(FDI) 중 3분의1가량도 조세피난처로 흘러간 것으로 집계됐다.
9일 조세당국과 수출입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해 조세피난처(관세청 기준 62지역)에 대한 수출입 외환거래액은 3,468억달러로 총 외환거래액(1조1,173억달러)의 31%를 차지했다. 이 중 실물거래를 수반하지 않은 거래액이 무려 1,877억에 달했다.
특히 지난 10년간 조세피난처와의 수출입 실물거래액 증가폭은 완만한 데 비해 외환거래액만 급증, 세정당국이 정밀검증에 나섰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조세피난처와의 수출입실물거래 증가율은 51.1%(1,053억달러→1,591억달러)에 그쳤는데 외환거래액은 322.4%나 급증(821억달러→3,468억달러)했다. 국내에서 번 소득을 조세피난처로 빼돌리는 규모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전체 FDI(390억800만달러)의 32.5%인 126억9,500만달러도 조세피난처로 흘러간 것으로 조사됐다. 전년도의 20.1%(91억6,400만 달러)보다 크게 늘어난 수준이다.
그 중에서도 '제3국 진출' 목적의 투자액 비중이 치솟은 것이 눈에 띄었다. 조세피난처 FDI 중 3국 진출용 비중은 2008년 불과 15.6%(21억5,300만달러)였으나 지난해 6월 말에는 32%(40억6,200만달러)로 급증했다. 보통 제3국 진출용 투자는 해외 주요 지역에 제조ㆍ물류거점을 세우는 것이지만 조세피난처를 거점으로 삼은 뒤 본국과 제3국 간 우회거래를 중개해 소득을 탈루하는 목적으로도 악용될 수 있다.
네덜란드에 대한 FDI 규모가 치솟은 것도 지난해의 특징이다. 네덜란드는 페이퍼컴퍼니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국가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네덜란드 FDI는 28억4,6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대비 9.2배나 늘었다. KOTRA 관계자는 "네덜란드는 자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 배당ㆍ자본소득 비과세를 하는데다 각종 로열티 등에 저율과세를 한다"며 "지주회사나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우회거래를 해 조세를 회피하는 데 자주 이용된다"고 전했다.
조세전문가들은 조세피난처로의 자금흐름을 정밀하게 추적해 세금을 매길 제도적 인프라가 미흡하므로 정부의 탈세포위망에 뚫린 구멍을 시급히 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