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CEO 칼럼] 공기업과 3개의 토끼굴


'한비자(韓非子)'에 보면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쳐 죽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농부 이야기가 나온다. 현실에 뿌리를 둔 냉철한 실용주의적 법가 사상을 주장하던 한비자에게 요(堯)임금이니, 순(舜)임금이니 하며 성인(聖人) 타령이나 하는 이상주의자들은 수주대토(守株待兎)하는 농부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인습과 구태에 얽매여 자기혁신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 13일 기획재정부는 103개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에 대한 지난 2011년 경영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평가의 화두는 단연 자기혁신이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공기업도 자기혁신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라는 것이다.


말 테마파크 등 사업다각화 추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잔불들이 곳곳에서 다시 타오르고 있다. 남유럽의 부채 증가, 중국의 성장 둔화, 미국의 긴축재정 등 우리를 둘러싼 경제환경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기업도 과거처럼 현실에 안주하다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부채를 줄여 재무건정성을 확보하고 공공서비스 품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국민의 혈세로 방만하게 운영된다는 꼬리표를 떼려면 성과 위주의 경영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필자가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한국마사회도 새로운 시험을 시도 중이다. 우선 사업다각화 프로젝트다.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가 설립된 이래 90년 넘게 단일사업ㆍ단일매출 구조를 유지해온 한국마사회는 전체 매출의 98% 이상을 경마시행에서 벌어들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산업육성법이 제정되면서 기업가치와 사업영역에 변화의 전기가 마련됐다. 부가가치가 높은 말산업은 농촌경제 활성화는 물론 신규고용 창출과 국민 삶의 질 향상까지 다양한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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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대상으로 한 특별법 제정은 세계 첫 사례다. 그만큼 말산업의 잠재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말은 다른 가축과 달리 살아 있는 상태에서 경마나 승마(재활승마 포함)ㆍ관광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며 높은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한국마사회는 말산업을 기반으로 다양한 파생사업에서 블루오션을 찾고 있다. 말 테마파크는 어린이와 가족에게 체험과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서 수익까지 거둘 수 있다.

말산업은 1차 산업인 말 생산(축산업)에서부터 2차 산업인 경마 및 승마장비산업(제조업), 3차 산업인 경마시행(서비스업), 4차 산업이라 할 수 있는 경마ㆍ승마 게임이나 정보ㆍ교육산업까지 망라하는 종합 산업이다. 현재 우리나라 말산업의 경제적 부가가치는 경마 2조81억원, 말 생산 391억원, 승마 142억원 등 총 2조3,000억원 수준이며 오는 2021년 경제효과 4조5,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최대 말산업국가인 미국의 말산업 경제기여효과 126조원에 비하면 갈 길이 멀지만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승마힐링센터 등 사회공헌활동도

이익 창출을 통한 자립이 공기업의 외부적 덕목이라면, 내부적 덕목이자 존재가치는 사회공헌이다. 한국마사회는 지난해 약 1조4,000억원의 세금을 냈고 농어촌발전기금 2,294억원을 출연했으며, 사회기부금 204억원을 집행했다. 사회 문제 해결에 나설 전략적 사회공헌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다. 우선 청소년 폭력, 자살 등을 유발하는 정서장애 치유를 위해 25일 첫 승마힐링센터 개소를 시작으로 2022년까지 전국에 30개소를 건립할 계획이다.

교토삼굴(狡兎三窟), 영리한 토끼는 3개의 굴을 판다고 한다. 한국마사회는 그동안 경마라는 1개의 굴만 파왔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또 다른 2개의 굴을 준비 중이다. 말산업 육성을 통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것, 무한 사회환원을 통한 사회적 존재가치를 부양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마사회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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