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수필] 1년전과 1년후

金仁淑(소설가)최근들어 「소비심리가 살아난다」는 식의 기사를 자주 보게 된다. 올해에는 경제가 회복되리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여러가지 지표를 통해 확인되기도 하거니와, 이제 치를 것은 거의 다 치른게 아닌가하는 생활속의 실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악의 파탄을 겪은 가정이 아니라면, 지난 한해동안 움추러들었던 심리적인 공포에서 조금쯤은 기를 펴고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일 터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의 오늘쯤에 나는 생전 쓰지않던 가계부를 펼쳐놓고 가계를 걱정하는게 아니라 생존의 걱정에 파묻혀 있었던 듯싶다. 가히공포라 할만했다. 어떻게 살것인가가 아니라 과연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들을 했던 것같다. 그러니 가계부라는게 무슨 소용이 있었을 것인가. 가계부를 놓고 생계를 고민한다기보다는 성서나 경전을 앞에 놓고 「보우하사」하는 심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이 고작 1년전의 일들이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고작 1년전의 일인가? 자동차를 공짜로 내놓아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고, 집값이 왕창왕창 떨어지다못해 팔리지도않아 집을 깔고 앉아있다는 것이 오히려 고민거리고,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서울의 도로가 텅텅비고, 백화점이 파리를 날리는대신 옷 수선집이 다시 인기를 끌고, 결혼을 기약했던 청춘남녀들이 결혼식을 미루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 금모으기운동이 벌어지고, 그러면서 이것이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말에 경악하고 했던, 그 모든 일이 말이다. 어쩐지 그 모든 일이 10년쯤 전의 일들인 것만 같다. IMF라는 말도 하도 외워대다보니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서 그저 단이 약간 해져 입기에 즐겁지 않은 불편한 옷정도로만도 여겨진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과장인가? 아마도 이런 투의 말들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IMF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극명화시킬 것이란 예상은 애초부터 있었던 일이다. 지난 1년 파탄을 겪은 사람들은 더 내려갈 곳이 없는 바닥으로 내려앉은 반면, 그들의 파탄을 딛고 위기를 견딘 사람들은 다시 봄을 믿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 봄을 믿고 봄을 기다리며 봄을 희망하는 일에 대해 비난할 까닭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성급히 겨울옷을 벗어던지려고 하는 동안 솟아오를 길 없는 바닥으로 내려앉은 사람들은 어찌할 것인가. 「소비심리가 살아난다」는 말에 대해 그들은 뭐라고 말할 것인가. 적어도 올해의 봄이 지난해의 긴긴 겨울을, 그리고 여전히 지속되어갈 그 겨울의 흔적들을 잊지않는 봄이 되었으면 싶다. 조금 따뜻한 듯싶다고 성급히 내복을 벗어던지는 일 같은 건 절대로 없었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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