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브랜드 증후군/이근영 신용보증기금 이사장(로터리)

옛날엔 새해 첫눈이 내리면 풍년을 기약하는 서설이라고 반가워 했다. 그러나 요즘은 눈이 조금만 내려도 짜증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심한 교통체증현상은 물론 비용의 추가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직업의식에서인지 펑펑 쏟아지는 눈이 내겐 올 한해 중소기업에 닥칠 어려움을 연상케 한다.각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하루평균 30여개의 기업이 도산했던 지난해 경기침체가 새해 들어서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자금난, 인력난, 판매난과 더불어 연초부터 달아오르는 노사 갈등, 개방의 거센 물결, 꿈틀거리는 부동산가격 등으로 올해는 중소기업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물론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영 변화에 대응치 못한 한계기업의 도태는 자유시장 경쟁원리가 지배하는 경제질서하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꾸준한 기술개발로 경쟁력을 키워 온 우수기업이 연쇄도산에 휘말리는 사태를 접하게 되면 안타깝고 허탈감마저 들기도 한다. 얼마전 만난 한 중소기업 사장의 얘기는 이 대목에서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을 데리고 백화점에 갔다고 한다. 생일선물로 겉옷을 사기 위해 의류매장을 한바퀴 돌아본 아들은 그냥 귀가하자고 했다. 원하는 브랜드제품이 없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였다. 순간, 중소기업을 하는 아비로서 그는 자식에 대한 깊은 실망감과 함께, 아이들까지 물든 맹목적인 유명브랜드 선호풍조야말로 중소기업을 허약하고 병들게 하는 주범중의 하나임을 실감했다고 한다. 물론 상품의 브랜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Coca Cola,Levis,IBM」등과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재산적 가치로 환산되어 공표되고 있다. 국민소득의 향상, 상품의 다양화, 소비의 고급화에 따른 소비자들의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선호는 어쩌면 당연하다. OEM(주문자상표 부착생산)수출에 크게 의존하며 경영부진의 원인분석과 경쟁력 제고에는 힘쓰지 않고, 그 결과로 빚어진 자금난만 탓하는 우리 중소기업의 현실에 비춰 볼 때 세계적 브랜드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외국 유명기업이 부럽기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분수에 맞는 실용적인 건전한 소비행태가 전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충분한 상품지식도 없이 맹목적인 허영심과 자기과시의 방편으로 브랜드를 선택하는 무분별한 소비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NBA선수의 사인볼, 미 프로야구팀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미식축구 헬멧이 적게는 20만원, 많게는 80만원이상인데도 없어 못파는 믿기지 않는 기현상이 이땅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신의학계가 자기분수를 망각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진단한 이같은 「브랜드증후군」에 상당수 국민이 감염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세계화시대에 국산품 이용을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중증에 이른 브랜드신드롬에 대한 우리의 자각과 치유가 없다면 정부에서 온갖 지혜를 모아 힘들여 보호육성책을 펼친다 해도 중소기업을 더욱 휘청거리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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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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