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건축계가 안방 굴욕을 면하려면

설 연휴 직후인 지난 25일 아침 경기도 분당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 검정색 승용차가 진입로 초입에서 멈춰서 있었다. 승용차 주위로는 LH 노동조합 조합원 20여명이 에워싸고 있었다. 이들은 LH 상임감사위원의 차를 가로막고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차에서 내린 상임감사가 길을 터줄 것을 요구했지만 노조는 요지부동이었다. 상임감사는 결국 운전기사에게 회차(回車)를 지시했다.


LH 상임감사가 노조원들에게 출근을 제지 당한 것은 지난 18일 단행된 본부장 및 처ㆍ실장 인사가 발단이 됐다. 인사에서 신임 감사실장에 전(前) 재무처장이 임명됐다. LH 노조, 특히 옛 토지공사 노조는 신임 감사실장이 옛 주택공사 출신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2009년 토공과 주공이 통합할 때 감사실장은 토공 몫으로 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번 인사에서 이 같은 원칙이 깨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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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는 공기업 선진화를 위해 토공과 주공이 합쳐져 2009년 9월 출범했다. 통합 논의가 시작된 지 15년 만이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통합이 불가피하다는 여론과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밀려 일단 '물리적 통합'은 했지만 '화학적 결합'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LH는 출범 당시 토공과 주공이라는 출신 성분을 배제한 혼합 인사배치와 능력ㆍ적성을 우선한 인사를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통합의 시너지 극대화에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이번 인사를 둘러싼 내홍을 통해 드러났듯 2년이 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부적으로는 출신 성분을 따지는 등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LH에는 토공과 주공 노조가 별도로 존재한다. 복수노조 시대에 문제 삼을 일은 아니지만 옛 출신별로 나눠진 노조는 조직의 화학적 결합을 가로막는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토공 노조는 이날 출근 저지 투쟁 현장에 '통합 정신 훼손하는 상임감사 물러나라'는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다. 이런 식이라면 '국민의 사랑(Love)을 받고 행복(Happiness)을 주기'까지 갈 길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성행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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