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 진입 초기 일본인들의 소비행태는 현재 우리와 판박이었다. 소득은 늘지 않는데 기대수명만 높아지면서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경기회복 불투명 등이 지갑을 닫게 한 것이다.
소비는 철저하게 축소지향적이었다. 돈을 써야 할 때도 저가 의류인 유니클로와 1엔짜리 초저가 휴대폰 등 축소지향형 소비가 다반사였다. 먹거리도 90엔(약 900원) 균일가 회전초밥집이 문전성시를 이뤘고 100엔(약 1,000원)짜리 햄버거도 등장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매년 한 해의 히트상품을 발표하는데 1996년에는 단돈 1엔짜리 저가 휴대폰이 선정됐다. 1998년에는 100엔숍, 2000년에는 유니클로가 꼽혔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끄는 저가 의류·생활용품 업체 무인양품도 1990년대 백화점 가격의 70%대에 불과한 저렴한 가격과 단순한 디자인을 앞세워 일본 의류 및 가구시장을 석권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미래시장연구실장은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건설회사 말단 직원이 가방 2개에 돈을 가득 채워 접대를 다니고 1,000만엔(약 1억원)에 달하는 자동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경기가 호황이었다"며 "하지만 1990년대 버블이 붕괴되면서 축소지향 소비로 급반전됐다"고 말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1990년대 초반 '청빈사상'이라는 절약을 미덕으로 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먹거리도 마찬가지. 1993년 니혼게이자이 히트상품으로 뷔페가 선정됐다. 싼값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95년에는 맥아 함량을 줄여 고율의 세금을 피하면서도 맥주와 비슷한 알코올 도수와 맛을 내는 발포주(핫포슈)가 꼽혔다. 이 실장은 "접시당 균일가 90엔에 파는 회전초밥집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도 "'닭고기 탕 같은 저렴한 음식이 잘 팔리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반면 고급제품들도 동시에 인기를 끌며 소비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 연구위원은 "2000년대 들어 비정규직이 급증해 초저가 상품이 많이 팔리는 한편 고가제품도 동시에 팔리는 소비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경차가 많이 팔리는 한편 고급 외제차도 이에 못지않게 판매됐다. 당시 외제차가 인기를 끌자 도요타·닛산 등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렉서스·인피니티 등 고급라인을 개발했다. 가전제품은 파나소닉이 만든 보급형 브랜드 '내셔날'이 고전했으며 대신 중국산 저가 브랜드 '하이얼'이 선풍기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외식 업계에서도 패밀리 레스토랑 '스카이락'이 중산층을 공략하며 중식·양식 등 4~5가지 종류의 레스토랑을 운영했지만 현재 사업규모가 5분의1로 줄었다. 주택도 도쿄 근교에 고급 맨션단지가 들어선 반면 본 가격의 60%대로 일본 전통가옥을 흉내 낸 집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