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추경예산편성은 외형상으론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이 꼭 써야할 돈이 모자란다면 추경예산을 짤 수는 있다. 중앙은행이라고 예외는 아니다.그러나 추경예산편성에도 어느 정도의 관례나 원칙이 있는 법이다. 추경은 홍수, 태풍피해 및 실업자급증 등 돌발사태 발생때 주로 이용된다. 당초 예산을 짤때 예기치 못한 일이 터져 예산이 부족해질때 고려할 수 있는 예외적인 예산확보방법인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때 한은의 추경편성은 일종의 편법이라고도 할수 있다. 국제금융센터의 한은출자분과 일부사업비는 물론 추경의 대상으로서 상식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추경의 대부분이 임직원의 월급이어서 사정이 특이하다. 경상비성격의 인건비는 예산편성을 할때 기본적으로 확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은으로서도 이런 일은 전례가 없다.
이런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은 자체 예산을 잘 챙기지못한 한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한은과 재경부의 해묵은 감정싸움이 중앙은행 최초 추경편성의 근본적인 배경이라는 점은 우려할만한 일이다. 한은이 요구한 예산안중 재경부가 경비성예산 20% 줄여 승인한데 대해 한은이 자체안대로 예산을 집행하다가 급기야 예산이 바닥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재경부가 경비성예산 20%를 삭감한 올해 예산안을 승인한 것부터가 다소 무리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은의 구조조정노력을 별로 인정치않고 다른 정부부처의 경비성 예산삭감률의 2배가 넘는 삭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중앙은행이 예산승인부처의 승인내용에 위배되는 예산집행을 밀어붙인 것도 잘한일은 못된다. 그동안의 구조조정에 자족치 말고 일부 지방점포의 통폐합 등 남아있는 구조조정의 실행에도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재경부가 일단 한은의 요구를 수용, 사태가 수습 국면을 맞았지만 비슷한 사태가 매년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한은이 기본적으로 재경부의 예산승인권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승인권을 둘러싼 재경부와 한은의 알력이 추경편성사태로까지 비화된 상황에서는 한은의 예산승인권을 아예 기획예산부로 넘기는 방안도 검토해볼만하다. 어떤 형태로든 통화정책협의와 예산권간의 마찰이 해소되도록 한은과 재경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