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일그러진 '비정상의 정상화'

총리실 "부처마다 5건씩 제출" 황당 요구

중앙정부 부처의 A과장은 최근 총리실로부터 황당한 공문 하나를 받았다. 내용은 '소속 부처의 비정상 관행 5개를 발굴해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A과장은 "열흘도 안 되는 기간을 주고 무조건 숫자를 적시하며 잘못된 행정관행을 만들어 제출하라는 것인데 이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잘못된 관행을 바꾸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스스로 잘못한 것을 찾아내 고해성사하라는 것"이라며 "스스로의 행위를 부정하라는 얘기와 같은데 차라리 외부감사를 받는 게 낫다"고도 했다.

"비정상 관행을 정상화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가 정작 일선현장에서 실행에 옮겨지면서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29일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에 따르면 총리실은 지난주 초 '비정상 관행의 정상화 과제 제출 협조' 공문을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에 보냈다. 총리실은 공문에서 중앙부처는 5개씩, 공공기관은 3개씩의 비정상 관행을 찾아내 이번주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이 공문은 지난 20일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든 정부부처와 공공기관들을 대상으로 과거에 잘못된 관행과 비상식적인 제도들을 찾아서 바로잡도록 해야 한다"며 '비정상 관행의 정상화'를 주문했을 즈음 배포됐다.


공문에서는 비정상 관행으로 변화된 사회상에 뒤떨어진 법 또는 제도, 예산 관련 탈법ㆍ편법적 운영 및 전용 등을 꼽은 뒤 그 사례로 ▦환경변화에 부합하지 않는 의료 관련 법제도 ▦각종 보조금 부당수령 ▦국립대병원 직원과 그 가족의 진료비 감면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미환수 ▦원전납품 관련 구조적 비리 ▦교직원 연금대납 등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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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당 부처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사이에서는 "공문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방식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졸속행정'이자 '보여주기를 위한 건수 채우기'라는 것이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그 짧은 기간에 공문에 적시된 예시와 부합하는 비정상 관행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며 "지난 한주 내내 고민한 끝에 간신히 건수를 채워 제출했다"고 말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부처의 한 공무원은 "비정상 관행의 정상화'를 비정상적으로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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