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IB&Deal] 한국 IB의 대부 윤경희 전 한국맥쿼리증권 회장

IB시장 야수 전쟁터지만 남 비난 않고 경쟁하니 160개의 툼스톤 따라왔죠

증권 CEO 장기전략 갖고 신뢰 쌓아야 글로벌 IB 가능

출범 10년 PEF시장, 올 투자회수 성적에 명암 갈릴 것

장기신용銀 외자유치 했다면 IMF 견뎠을텐데 아쉬움


"투자은행(IB)은 결국 사람 장사예요. 시장이 좋지 않거나 불확실할 때도 씨를 계속 뿌려야 나중에 거둘 수 있죠. 그런 면에서 국내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의식이 부족하고 그들의 임기도 너무 짧습니다."

국내 IB업계의 대부인 윤경희(사진) 전(前) 한국맥쿼리증권 회장의 목소리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는 지난 40여년간 한국 자본시장 역사의 산증인으로 숱한 업적을 쌓아왔지만 국내에서 글로벌 IB의 출현을 보지 못하고 은퇴한 것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윤 전 회장은 2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IB의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윤 전 회장은 정부나 업계에서 글로벌 IB를 외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국내 IB들이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배경으로 척박한 경영문화를 꼽았다. 그는 "IB의 핵심은 네트워킹 능력으로 결국 사람 장사"라면서 "최소 3년은 투자한 후 5~10년에 걸쳐 사업에 대해 평가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IB도 CEO가 장기적인 전략을 갖고 기업들과 깊은 신뢰를 쌓아갈 때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국내 증권업계 CEO들의 수명이 너무 짧아 사업의 영속성과 전략 측면에서 국내 IB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윤 전 회장은 우리나라 1세대 투자은행가다. 지난 1976년 국내 최초 IB인 한국종합금융에 입사한 후 지난해 말 한국맥쿼리증권 회장직을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40년 가까이 IB에서 한우물을 팠다.

그가 한국 대표를 거친 외국계 IB만 해도 ING베어링증권·ABN암로증권·맥쿼리증권 등으로 화려하다. 국내 유가증권시장의 대장주로 자리 잡은 포스코·한국전력(015760)·국민은행 등 숱한 기업들이 모두 윤 전 회장의 손을 거쳐 증시에 입성했다. 그가 IB업계에 몸담으면서 받은 툼스톤(거래성공을 기념해 고객사가 자문사에 주는 기념패)만 160개에 달한다. 이에 대해 윤 전 회장은 "시장은 딜을 따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전쟁터"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툼스톤은 하나하나가 훈장이자 피와 땀의 결정체"라고 밝혔다.


지난 40년간 IB업계를 주름잡았던 그에게 아직 잊혀지지 않는 딜이 하나 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장기신용은행의 외자 유치 실패가 바로 그것.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불거지기 전인 1996년 장기신용은행은 미국과 영국 등 유럽시장에 3억달러 규모의 해외주식예탁증서(DR) 발행을 추진했다. 유 전 회장은 당시 ING베어링 대표로 유럽시장 자문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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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행장이 마지막 발행가격을 조율할 때 본인이 원한 가격보다 낮자 발행을 포기했다"면서 "그때 내가 좀 더 강하게 밀어붙였더라면 장기신용은행이 자금조달에 성공해 이듬해 찾아온 IMF의 풍파를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금융권에서는 당시 맨파워가 동종 업계에서 가장 뛰어났던 장기신용은행이 IMF에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국내 은행들의 CEO 수준도 한 단계 올라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기억에 남는 딜로 그는 SK의 하이닉스 인수를 꼽았다. 그는 "2012년 하이닉스가 매물로 나왔을 당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반도체 회사가 리크스가 클 것으로 보고 쉽게 인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시장을 정확히 분석한 훌륭한 참모들의 조언 덕에 하이닉스를 품을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출범 10년 만에 51조원 규모로 성장한 사모투자펀드(PEF) 시장에 대해서는 올해 투자 회수 실적에 따라 PEF들의 명암이 엇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유 전 회장은 "PEF들은 주로 투자에 5년, 회수에 5년 등 총 10년 장사를 한다"면서 "맥쿼리·MBK·보고펀드·한앤컴퍼니 등 다수의 PEF들이 올해 투자 회수 시점을 맞고 있어 그 결과에 따라 시장의 평가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 투자은행가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IB시장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야수들의 전쟁터죠. 딜을 따내는 데 집중하다 보면 서로 헐뜯고 욕을 하는 유혹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결국 화살은 자기에게 돌아와요. 지금 돌이켜보니 제가 장수했던 가장 큰 비결은 뭘 잘해서가 아니라 남을 절대 비난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He is…

△1947년 충북 옥천 △1969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76년 한국종합금융 이사 △1997년 ING베어링증권 한국대표 △2004년 ABN암로증권 한국대표 △2008년 한국맥쿼리증권 회장 △2015년 한양대 경영학부 석좌교수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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