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한미 FTA 소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한국 국회 비준만을 남겨두고 있는 지금, 협상 개시부터 지금까지 6년 가까운 세월을 숱한 논란의 중심에 있었거나 측면 지원을 해온 당사자로서 여러 가지 소회가 깊다. 그 치열했던 반대의 목소리는 대부분 상대 국가가 미국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됐다. 미국보다 경제 규모가 더욱 큰 유럽연합(EU)과의 협상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무관심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초강대국 미국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은 다양한데 FTA 반대 인사들에게 투영되는 미국은 제국주의, 패권추구, 약육강식, 신 자유주의로 무장한 괴물이었다. 그 괴물과의 FTA는 모든 재앙을 불러오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산업의 몰락, 양극화, 동양적 공동체의 와해가 불을 보듯 뻔해 한미 FTA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찬반논쟁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인 토의는 실종되고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과장과 왜곡 앞에서 전문 지식이 부족한 일반 국민은 혼란에 빠졌다.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일 때 TV 심야토론을 지켜본 전직 고위 통상관료는 자기도 혼란스럽다고 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전문가들도 모르는 사실을 끊임없이 발굴해서 이를 한미 FTA와 연관 짓는 전술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예를 보자.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10여년 동안 5.7% 늘어난다는 모형 추정 결과가 조작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즉 컴퓨터는 다른 숫자를 내어놓았는데 이를 고쳤다는 혐의를 씌웠다.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들고 국회에 가서 전 과정을 반복하기까지 했지만 의혹은 계속됐다. 계량경제학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연산가능일반균형(CGE) 모형에 대해 학술 세미나에서나 있을 법한 난해한 논쟁이 장기간 계속되다 보니 온 국민이 CGE 모형 전문가가 됐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왔다. 한미 FTA를 하면 빈곤층이 양산되고 양극화가 확대된다는 주장의 증거로 멕시코가 걸려들었다. 멕시코시티 교외 언덕에 광범위하게 밀집된 빈민촌이 NAFTA(미국ㆍ캐나다ㆍ멕시코 FTA) 때문에 생겨났다는 주장이 나왔다. 필자는 일부러 멕시코까지 가서 빈민촌을 직접 보고 전문가들도 만나봤다. 멕시코는 NAFTA 발효 직후 외환위기를 맞았다. 외환위기의 후유증을 NAFTA의 책임으로 전부 돌린 것이다. 반대 측이 극단으로 나오면 찬성하는 측도 극단으로 나간다. 흑백논리가 판을 치니까 지지하는 쪽은 한미 FTA가 마치 우리 경제를 선진화시켜주는 요술방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장점만 부각시키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하는 주장에도 가끔은 새겨 들어야 할 진리가 있다. 지금 야당이 문제 삼고 있는 투자자국가제소제도(ISD)는 전체적으로는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지만 국내의 규제 정책이 합리성을 결여하고 외국인 투자자를 차별 대우할 때에는 제소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지적을 수용해 부동산 안정정책을 제소대상에서 제외하게 됐던 것이다. 이처럼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족한 점을 깨닫게 되는데 이러한 토론 문화야말로 상생의 문화이며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지금 야당은 한미 FTA 비준을 반대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독소조항들은 이미 입이 닳고 잉크가 마르도록 논쟁을 벌인 만큼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 야당의 주장 중에서 통상절차법은 정부 여당이 수용했고 피해 대책은 여야가 합의하면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일이다. 제재협상이 물 건너갔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야당이 이를 고집하는 것은 내심으로 한미 FTA를 무산시키고 싶으나 여론의 부담 때문에 딴청을 부리는 것이다. 야당이 미국을 싫어한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싫고 좋음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준안을 놓고 표결 처리하지 못하는 다수당인 여당이다. 강행 처리를 안 하겠다는데 그러면 야당이 합의해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인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여당의 무기력한 모습은 국민을 실망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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