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사람중심 도시 기로에 선 서울역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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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개발이 우선이던 시절에 급증하는 자동차는 발전의 성과처럼 보였다. 경제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던 이 시절에는 보행주권 포기를 강요받았지만 아무도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도시의 주인인 시민들이 넓은 아량을 베풀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권리 포기였다. 도로확장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된 것이 고가도로였다.


공원화 통해 '걷고 싶은 도시' 실현

하지만 시간이 흘러 보행주권에 대한 인식이 강해지면서 경제발전의 상징이었던 고가도로는 도시 경관을 훼손하는 흉물이라는 지적을 받았고 철거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청계고가 철거를 시작으로 도심 고가도로가 빠르게 사라졌다. 이제 서울역고가도로가 마지막 도심의 고가도로가 됐을 정도다. 이는 마치 횡단보도 설치와 함께 소리 없이 사라진 육교의 현실과 비슷하다.


권리 회복을 서두르는 과정에 지난 세기 우리의 삶과 함께했던, 구름다리로 불렸던 육교가 빠르게 사라졌다. 다행히 사대문 안에는 육교가 한 개 남아 있다. 동호로를 사이에 두고 충무초등학교와 구동북초등학교를 연결했던 것이 이제는 도심의 유일한 육교다. 이 육교는 쉽게 잊히는 보행권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근대도시와 건축을 업으로 삼은 필자는 지난 세기 우리의 삶을 담고 있고 우리와 호흡했던 현장을 서울의 변화와 성장의 증거로 남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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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육교에 이어 또 다른 기회를 갖게 됐다. 서울역고가도로가 그것이다. 서울역고가도로가 횡단보도와 다른 점은 기존의 시설을 없애지 않고 용도전환을 통해 새로운 가치 실현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절 서울의 경제중심은 단연코 영등포였고 정치와 문화의 중심은 사대문 안이었다. 그래서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는 도심과 영등포를 잇는 데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서울의 영역이 빠르게 확장되면서 서울의 동쪽도 중요해지고 한강 이남으로의 성장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서쪽으로만 향했던 도로망이 새롭게 재편됐다. 그 사이에 우리의 기억 속에 영등포로 대표되는 서울의 서쪽은 사라졌고 중림동과 만리재 너머 마포는 역사에 묻히는 듯했다. 그런데 한때의 기억으로 남을 뻔했던 만리재 너머 마포나루로 이어지던 옛길의 추억이 오늘의 삶 속에 의미 있게 다가올 기회가 생겼다. 서울역고가의 보행도로화 사업이 그것이다.

역사·문화 공유 동시에 보행권 회복 기대

이는 10여년 전부터 추진됐던 역사도시 서울의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의 결정판임과 동시에 서울 근현대사에서 1960~1970년대 서울의 성장에 몸을 바친 후 사라져버린 소중한 서울의 한 곳을 우리 삶의 일부로 되살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역사도시의 관문이었던 남대문과 근대도시의 관문을 넘어 공항철도와 연결되고 대륙철도의 출발지로 세계도시의 관문이 될 서울역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서울역고가는 경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경제도심 영등포와 정치중심을 자동차로 이었던 서울역고가는 발품을 팔아 역사와 문화를 우리 모두가 공유하게 함으로써 경제제일주의의 패러다임을 사람중심으로 바꾸는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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