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고] 정치인이여 역사의 판결을 두려워합시다!

정치를 하고있는 나로서는 항상 되묻게되는 질문이다.이 질문을 반복하며 올바른 정치인의 모습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길 원한다. 일본의 나카소네 전 수상은 『정치인이란 역사의 법정에선 피고』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실로 의미 심장하다. 실제로 역사는 정치인들에게 준엄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현실 법정에선, 피고들이 대개 법정의 생리를 잘 모르기에, 피고들이 자기 주장을 하다보면 오히려 더욱 불리한 발언들을 하다가 종국에는 재판을 망쳐놓을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는 것은 나 같은 변호사들의 주된 임무이다. 그러나 역사의 법정에 서는 정치인들은 도통 변호를 의뢰하려 하지 않는다. 자기 주장만을 일삼다가 법정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예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괴문서 폭로를 둘러싼 정형근(鄭亨根) 의원과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경우이다. 鄭의원에게는 기실 역사적인 평가가 진행되어 왔다. 고문, 공작, 음해 등등의 명사는 그에 대한 판결로 굳어지는 듯 하였고, 그에게는 특별한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의 변론의 기회는 그에게 새로운 명사를 붙여주고 만 꼴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다름아닌 「지역주의와 정치퇴보의 주역」이 그것이다. 그것만으로 끝났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결국 20세기 마지막 정기국회를 파행시키고 정치를 실종시켜 버렸다. 만약 지금이라도 그가 변호를 의뢰한다면 변호사는 충심으로 조언할 것이다. 주장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검찰에 나가 사실관계를 밝히는데 협조하라고, 이종찬(李鍾贊) 부총재와 두 기자가 검찰에 나갔으니, 당신이 안가는 것은 명분이 전혀 없다고, 그 길이 역사의 판결에서 형량을 줄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이회창 총재 역시 현실에서 판사의 역할만 하다보니 그런지, 역사의 법정에 선 피고역은 영 어색하기 그지 없다. 대통령에 대한 악의적인 모독을 두고 『아니면 됐지!』라고 비호하며 국회 파행을 주도하는 변론은 그에 대한 판결에 대단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 없다. 언론대책 문건 파동에 대해선 국정조사를 하겠다는 정부여당의 자세도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의 李총재에 대한 판결은 결자해지의 결단으로 국회정상화를 위한 성의를 보이는 것에 좌우될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도 피고에 불과하다. 역사의 법정에서 합리적인 자기변론을 도모해야 할 처지이다. 내가 펼치고자 하는 변론은 역시 국회정상화에 대한 촉구이다. 지금 공전되고 있는 국회가 어떤 국회인가? 내년도 국가예산을 처리해야 하는 국회이다. 각종 개혁입법과 민생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국회이다. 또한 정치제도와 선거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촌음을 다투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국회이다. 지금부터라도 밤을 지새워 법안을 연구하고 예산을 심의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이 부여한 사명을 생각할 때, 이보다 중요한 일이 지금 과연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정녕 부탁컨대 제발 국회로 돌아오시오!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를 통해 느꼈던 점 한가지는 우리 정치인들 중에는 역사의 판결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역사의 판결을 두려워할 때, 오직 선거를 의식한 지역주의 선동과, 악의적인 비난을 거리낌 없이 수행할 수 있을까? 그런 동료를 비호하기 위해 국회를 파행시켜도 괜찮을까? 나로서는 그럴 의사도 없지만 또한 그럴 자신도 없다. 이럴 땐 인간의 불안심리가 발동하나 보다. 공연히 그런 사람과 함께 재판받다가 선량한 동료 피고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칠까 두려워진다. 따라서 그런 선배, 동료 피고들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다. 『제발 역사의 재판장님 성질 좀 돋우지 말아주오! 불똥 튈지 모르겠소!』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추측과 억측에 따라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은 이미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21세기를 50일도 남겨놓지 않은 지금, 조속한 국회 정상화를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보여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신기남의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