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저유가의 역설] 신3저 덫에 걸린 한국… '저유가=성장' 신기루로 끝나나

세계시장 수요부진에 러發 금융위기까지 겹쳐

수출 늘어날지 미지수·기업 투자확대도 불투명

기름값 절약분 소비보다 빚상환·노후 대비 예상

각국 디플레 방어로 국내물가 추가 하락 할수도


저유가를 시작으로 한 3저, 즉 저유가·저금리·저환율의 호재도 한국경제는 더 큰 악재 속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형국이다.

한국경제는 되레 신3저의 덫에 걸렸다. 엔저·저성장·저물가다. 여기에 저유가로 러시아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신흥국이 휘청이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충격이 올 수 있다는 전망도 많다. 자연스럽게 기업은 투자를 멈추고 가계는 막대한 부채와 노령화로 소비를 줄이고 있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는 셈이다.


◇엔저, 신흥국·세계수요 부진 3각 파고…수출 늘지 의문=1980년대의 3저 호황 때는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는 초강세를 보였고 우리 수출은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 2기 집권에 성공하면서 엔화는 추가 약세를 보일 태세다.

세계 경기도 훨씬 안 좋다. 1980년대 3저 때는 석유파동 이후 전 세계가 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고 일본도 잃어버린 10년에 진입하기 전이었다. 최근에는 러시아발 금융시장 혼란으로 인도네시아·태국 등 신흥국의 환율가치와 주가가 급락하고 있어 우리 수출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가하락은 원유 수입 비중이 높은 일본이나 중국에도 똑같이 플러스"라며 "유가가 하락한다고 우리 수출만 잘될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가하락으로 우리나라가 국내총생산(GDP)의 2.4%에 달하는 원유 수입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지만 일본과 중국도 각각 1.2%, 0.8%를 절약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저유가→투자·소비확대?'…1980년대식 호황은 없을 듯=자동차에 넣는 기름 값이 유가하락으로 줄어든다면 소비자는 그 돈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 이것이 민간소비로 직결된 게 1980년대 3저 호황 때였다. 1985년 7.1%였던 민간소비 실질 증감률은 △1986년 9.1% △1987년 8.4% △1988년 9.2%로 고공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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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양 교수는 "사람들이 기름 값 아꼈다고 단기적으로는 소비를 늘릴 것 같지 않다. 가계부채·고령화에 따른 노후대비 등으로 빚을 갚는 데 주로 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도 "유가하락은 가계가 절약한 돈을 어디에 쓰든 분명 플러스"라면서도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모두 상쇄할 것 같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소비를 과거처럼 극명하게 늘리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설비·건설투자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2.0%까지 떨어졌음에도 경기전망이 불확실해 투자가 과거만큼 늘 가능성이 희박하다. 3·4분기 통화유통 속도가 0.73으로 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게 단적인 예다. 오세신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업들은 유가를 예측해 투자를 하는데 현재처럼 변동 폭이 크고 내년 전망을 하지 못하면 투자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디플레 스파이럴' 빠지나=유가하락에 따른 득은 불확실한데 실은 분명하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원자재분석부장은 "인플레를 걱정할 때 유가하락이 오면 물가를 진정시키고 수요를 늘려 경제성장률도 끌어올린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디플레의 시기라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오 부연구위원도 "1980년대 유가하락은 오일쇼크 이후 정치적 합의의 측면이 강했는데 지금은 공급확대와 함께 전 세계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위축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1980년대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더욱이 유럽·일본은 물론이고 중국마저 생산자물가지수가 하락해 디플레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어 과거처럼 저유가가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전 세계가 제품 가격을 인하해 디플레를 동시다발적으로 수출하는 현상도 배제할 수 없다. 오 부장은 "유가하락이 물가하락으로 이어지고 소비가 이연돼 물가가 또 하락하는 '디플레 스파이럴(Deflationary Spiral)'의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디플레 스파이럴이란 '물가하락→생산감소→임금 및 수요 감소→기대 인플레 감소→물가 추가 하락'의 고리가 형성돼 물가 상승률이 역나선형으로 둔화되고 나아가 마이너스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 크레디트스위스(CS)는 보고서를 통해 "유가하락이 한국 성장률을 소폭 제고하겠지만 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저유가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0.1%포인트 올린 3.8%로 잡았지만 물가지표 구성항목 중 연료 비중이 크다며 물가 전망치를 2.9%에서 0.9%로 대폭 낮췄다. 또 "내년 물가 동향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태규·조민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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