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결정은 대통령부터 사무관까지 모든 공직자들에게는 책임이 뒤따른다. 결정에 문제가 생긴다면 상황에 대해 해명을 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네 탓 공방은 책임을 미루는 것을 넘어 정부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고래잡이(포경) 재개방침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뒤늦은 질책은 또 한번 실망을 준다. 여론은 악화됐고 국제사회 비난으로 확산된 상황에서 뒤늦은 대통령의 질책은 정책신뢰도를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밀실 처리' 논란을 빚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마찬가지다. 여론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이기식 정책 처리에다 청와대와 외교통상부의 책임공방으로 이어지며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이제 와서 이 대통령은 정책 결정 단계에서 부처 간 협의를 하고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부문은 총리실과 청와대와 상의하라고 한다. 너무도 당연한 지시를 아니 원칙을 대통령은 두 번씩이나 반복했다.
고래잡이는 농림수산식품부가 이미 합법 포경을 위해 몇 년 전부터 조심스럽게 단계를 밟아온 사안이다. 어족자원 보호 등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여론도 형성됐다. 하지만 이러한 필요성을 바탕으로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은 생략됐다. 한일정보보호 협정이 국내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절차상의 문제도 고려하지 않은 채 밀어붙였다면 고래잡이는 국격이 높아졌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여론을 등한시한 채 밀어붙인 외교적 실책이다.
한일정보보호협정이나 고래잡이 재개 모두 대통령의 말처럼 부처 간 협의도 없었고 청와대와 총리실과의 상의도 없었다면 심각하다. 정책 컨트롤 타워의 무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와 국제사회 여론 동향이란 상황을 담고 있는 두 가지 정책 모두 대통령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결과에 대해서만 보고를 받아 그것을 뒤늦게 질책했다면 대통령의 임기 말 국정 장악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두 사안을 두고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발생했다고 하면 청와대는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반발한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정책은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절차상의 문제지 국민을 무시하지도 국제사회를 외면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비겁하다.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밀어붙였던 정책이 문제가 생겼다면 다시 설명하고 필요한 정책인 만큼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스스로 레임덕을 자초하지는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