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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뭐 한 게 있나요. (박)인비가 결혼하고 나서도 잘하니까 고마울 따름이죠."
아시아 최초의 골프 '커리어 그랜드슬래머' 박인비(27·KB금융그룹)의 남편인 남기협(34)씨는 아내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박인비와 남씨는 11개월차 신혼부부. 7년 연애 끝에 지난해 10월 결혼했다.
4일 오전 박인비, 장인·장모와 함께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남씨는 "제주도 대회를 마치고 경주 집에 들를 생각이다. 4개월 만인데 부모님이 정말 기뻐하고 계신다"며 들떠 있었다. 프로골퍼 출신인 남씨는 잘 알려졌듯 박인비의 스윙코치이자 매니저 역할을 겸하고 있다. "계속 옆에서 보다 보니 잘못된 점이 눈에 띄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지기 전에 건져내는 정도"라는 설명. 박인비는 그런 남씨를 "100점짜리 남편"이라고 했다. "사실 저보다 남편이 더 열심이죠. 제가 샷이 안 되고 힘들어할 때 더 열심히 연구하거든요. 보통 제가 10분 연습 스윙하면 남편은 30분을 연구합니다." 박인비는 "제가 노력한 것의 3배의 효과를 남편한테서 받는다"고 강조했다. 2008년 US 여자오픈 우승 이후 3년여간 이어진 슬럼프를 극복한 것도 남편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박인비는 결혼 전부터 '골프여제'였다. 결혼 후에는 지난 3일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으로 4대 메이저대회를 제패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남씨는 결혼 후 성적이 떨어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박인비를 '침묵의 암살자'라고 불렀던 미국 언론들은 '진정한 전설'이라는 새 별명을 지어줬다.
박인비가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올해 우승할 줄은 몰랐다. 2~3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처럼 남씨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대회 전부터 샷 감각이 너무 안 좋았다. 그나마 퍼트는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날(퍼트 수 24개) 그렇게 잘 들어갈 줄은 몰랐다"며 "2012년 우승한 에비앙 마스터스(현 에비앙 챔피언십)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부부는 이날 귀국 후 용인 수지의 박인비 친정에 들렀다가 바로 제주로 이동했다. 박인비는 서브 스폰서인 삼다수가 주최하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7~9일 오라CC)에 출전한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위암 투병 중인 할아버지도 대회 현장을 찾는다. 박인비는 "할아버지 생신이 있는 주에 항상 우승하거나 좋은 일이 생긴다. 브리티시 여자오픈도 그랬다"며 "국내 대회는 1년에 한두 번씩 출전하는데 아직 우승이 없다. 우승하고 싶다"고 밝혔다.
다음달 열릴 시즌 마지막 메이저 에비앙 챔피언십에 대해서는 "큰 욕심 없다"고 했다. 2013년 메이저로 승격된 에비앙까지 5개 메이저 모두 우승해야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고 보는 미국 언론도 있지만 박인비는 "집에 에비앙 대회 우승 트로피가 있다. 당시 대회가 메이저였든 아니든 저는 그 대회 우승자"라고 설명했다.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관련해 "출전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한 박인비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골프선수에게 체력 유지와 시차 적응은 필수입니다. 여러 나라를 돌며 매주 대회를 치르는 건 일상이에요. 누구나 힘들고 피곤할 수 있지만 버텨낼 정신력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승부가 갈립니다." 박인비는 국내 일정을 마치면 오는 20일 개막하는 캐나다 여자오픈에 나가 LPGA 투어 시즌 5승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