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시내의 상징적인 장소로 꼽히는 개선문 주변은 시내에서 가장 교통이 혼잡한 곳이기도 하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무려 12개의 도로가 방사형으로 연결돼 있다.12방향에서 진입한 차량들은 개선문을 끼고 빙빙 돌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빠져나가게 돼있다. 오래전에 건설돼 폭좁은 도로가 많은 파리 시내다 보니 개선문의 도로상황은 서울 영등포로터리를 뺨친다.
더욱이 이 개선문 광장에는 차선도 없고 교통경찰도 출퇴근 시간대에 서너명 나와 있는게 고작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복잡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차량흐름은 마치 물 흐르는듯하다. 앞차가 빠져주지 않는다고 경적을 울리는 차도 없다.
무질서하고 엄격한 통제가 없는 상황에서도 이처럼 교통소통이 부드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은 한가지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측 차량 우선」이다. 자기차 오른쪽에서 방향지시등을 켜고 들어오는 차량이 있으면 진행하던 차량은 무조건 멈추고 양보한다.
파리시내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교통신호를 잘 지키지 않는다. 이는 비단 파리 뿐 아니라 대부분의 서유럽도시에서 겪는 비슷한 현상이다.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훌쩍 길을 건너는 보행자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반면 차량들은 거의 예외없이 신호를 지킨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건너는 보행자가 없어도 반드시 차를 멈춘다. 이 때문에 파리시내에서는 횡단보도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횡단보도가 아니더라도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대부분 멈춰선다. 이처럼 운전자들이 철저히 신호를 지키는 이유는 이를 어겼을 경우 자신에게 돌아올 엄청난 벌금 때문이다. 신호를 어기다 적발되면 무려 우리 돈으로 4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파리의 교통문화에서 눈에 띄는 점은 운전자들의 예절이다. 파리시내의 좁은 골목길을 운전하다 보면 마주 오던 차량이 헤드라이트를 번쩍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때 헤드라이트를 번쩍거리는 것은 상대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먼저 지나가라는 신호다. 남이 양보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자신이 먼저 양보하는 운전 예절의 표현인 셈이다.
그렇다고 프랑스 사람들이 교통법규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법규위반은 훨씬 많은 곳이 프랑스다. 실제로 프랑스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차량들은 대부분 제한속도를 30~40㎞ 넘어 달린다. 하지만 이처럼 과속을 일삼는데도 과속차량을 단속하는 경찰은 눈에 띄지 않는다. 고속도로순찰대가 있지만 이들은 과속보다는 안전한 흐름을 유지하는데 더 신경을 쓴다. 일정구간별로 설치돼 있는 카메라를 통해 차량의 주행상황을 점검하고 과속보다는 난폭운전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고속도로 순찰대다. 속도에 관계없이 자주 차선을 바꾸며 지그재그 운전을 하는 차량이 발견되면 이를 단속한다.
인구 1,000만명이 넘고 시내 곳곳이 비좁은 골목길로 이뤄진 파리광역권 교통이 무질서한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원칙을 갖고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운전자들 개개인에게 어려서부터 경험한 운전예절이 몸에 밴 까닭이다. 【정두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