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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경제성장 종말… 기술 혁신해도 극복 못한다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리처드 하인버그 지음, 부키 펴냄)<br>자원고갈·환경파괴·금융붕괴로<br>세계경제 장기침체 시대 진입<br>공동체 복원해야 인류 삶 지속

지구상에 석유·석탄 등 화석 연료가 급속하게 줄어들면서 인류는 제로 성장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2013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에서 "2013년 국내 경제는 완만하게 개선되겠지만 성장세 회복 속도가 더딜 것"이라며 "실질국내총생산(GDP)이 잠재GDP에 못 미치는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질GDP에서 잠재GDP를 뺀 'GDP 갭'이 마이너스라면 실제 GDP 성장이 한 나라가 보유한 생산요소를 정상적으로 사용해 달성 가능한 수준(잠재GDP)을 밑돌고 있다는 뜻이다. GDP 갭은 지난 해 1분기 0%에서 2분기 -0.4%로 마이너스로 전환됐으며, 3분기와 4분기에도 각각 -0.2%에 머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 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성장은 멈추거나 지지부진한 상태다. 문제는 현재의 경제 상황이 단순한 경기순환상 하강 국면이 아니라 장기적인 침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탈탄소연구원의 수석연구원인 저자는 석유 에너지 고갈 문제에 관한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리먼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한 다음 날인 2008년 9월 16일 아침 문득 "우리는 경제 성장의 종말이 시작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라고 소개한다.


저자는 경제 성장 종말론 징후의 단적인 예로 2010년 석유 회사 브리티시퍼트롤리엄(BP)이 연루된 미국 멕시코만 딥워터호라이즌사 원유 유출 사고를 든다. BP는 당시 멕시코만 석유 시추 시행사였고, 딥워터호라이즌은 시공사였다. 멕시코만 시추 시도 자체는 석유를 얻으려면 더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석유 가격은 당연히 갈수록 비싸지게 된다. 딥워터호라이즌 사고는 또 재앙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난 환경 비용을 유발했다. 보험회사는 심해 시추에 대한 보험료를 인상했고 지역 경제도 타격을 받았다. BP의 주가가 폭락하고 BP에 투자한 영국 연금기금까지 심각한 타격을 입는 등 경제 전반에 연쇄적으로 악영향이 미쳤다. 저자는 이번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화석 연료와 광물을 비롯한 주요 자원의 고갈 ▦자원 채굴과 이용으로 인한 환경 파괴 ▦막대한 정부ㆍ민간 부채로 인한 금융 붕괴 등 세 요인이 어우러져 증폭되리라고 관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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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고갈로 인한 비용 상승을 기술혁신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저자의 반박도 귀담아볼 만 하다. 혁신을 통한 대체와 효율로 성장을 재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라는 것. 단적인 예로 옥수수에탄올을 만들 수는 있지만 재배에서 수확, 증류에 이르기까지 들어가는 에너지가 에탄올이 연소하며 만드는 에너지와 비슷하기 때문에 효율성은 '제로'라는 지적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경제가 영구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토대로 구축됐다는 점이다. 무한한 에너지 공급에 대한 환상이 허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 기대를 먹고 경제를 부풀렸던 '신용' 또한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저자는 "화폐는 본질적으로 노동과 천연자원에 대한 청구권이기 때문에 통화 공급이 증가하여 청구금액이 늘고 자원이 고갈되면 남은 자원으로는 화폐의 청구를 모두 청산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청구권의 가치는 순식간에 폭락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다면 제로 성장 시대에 인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저자는 성장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한 다음 제로 성장 시대를 이끌고 갈 새로운 경제의 토대를 닦고 사회적 통합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연료가 부족해지면서 국제 교역이 감소하면 우리의 삶은 국지화될 수 밖에 없다"며 "힘든 시기가 닥치면 당신의 이웃들이 바로 당신이 기대야 할 언덕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의 경제적ㆍ환경적 위기를 대비하려면 무엇보다 사회적 결속력을 다져야 하기 때문이다. '경쟁보다 복원이 중요하고, 내가 아닌 공동체를 우선 순위에 둬야만 인류의 삶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저자의 제언은 '거품경제' 시대를 지나 '제로성장' 시대로 접어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만 7,000원.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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