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살아나면 한국은…" 섬뜩한 경고
유럽 등 위기 그림자 옅어져…세계경제 재앙없는 한 해 될 것유로존 리세션 이어지겠지만 글로벌 경제 3%대 완만한 성장선진국 인플레 목표 잇단 상향 환율전쟁 갈수록 심화 우려엔저 업고 일본 기업 경쟁력 회복 한국기업에 상당한 위협 예상
뉴욕=이학인특파원 leejk@sed.co.kr
[글로벌 View 2013년 세계를 말한다] 리처드 호이 BNY멜런 수석 이코노미스트
"2013년 세계 경제는 '재앙'이 없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붕괴나 중국의 경착륙 우려 등 지난해 글로벌 경제에 드리웠던 그림자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복세가 급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글로벌 전체로 볼 때 3% 정도의 성장을 보일 것이며 하반기에는 3.3% 수준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미국 6대 은행인 뱅크오브뉴욕멜런(BNY멜런)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리처드 호이는 최근 뉴욕본사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글로벌 경제의 리스크 요인들이 크게 줄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경제에 대해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부터 지속돼온 감세기조는 끝났다며 앞으로 수년간 상당한 수준의 세금인상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미국 제조업의 부활, 값싼 국내 에너지 개발, 금융시장 안정 등의 긍정적 요인들이 증세에 따른 부정적인 효과를 상쇄해 미국 경제가 리세션으로 다시 빠져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이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경제와 관련해서는 엔 약세를 추구하는 일본 정부의 정책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거라는 정치적 변수에 따른 한국 경제의 영향은 한국 자체보다 일본 선거가 더 크다"며 "엔 약세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 회복은 한국 기업들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ㆍ공화 양당의 재정절벽(fiscal cliff) 협상이 난항 끝에 타결됐지만 미국의 재정적자 해결에는 미봉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증세와 재정긴축 두 가지 해법에서 증세 쪽으로 기울었다고 봐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은 단기간에 급격한 긴축은 없어야 하며 장기적으로 국가재정을 건전화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환경을 고려할 때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재정의 비율은 상향 추세를 이어갈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수년간 상당한 수준의 세금인상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2013년 미국 경제는 어떻게 전망합니까.
▦연간 2~2.5%의 성장을 할 것이라고 봅니다. 2012년 말부터 재정절벽 우려로 기업들의 자본투자가 줄어들어 상반기에는 낮은 성장세를 나타낼 것입니다. 하반기로 갈수록 기업들의 유보된 자본투자가 증가하고 주택시장 회복으로 개선된 소비심리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2013년 중반에는 성장률이 3%를 웃돌고 이 추세는 2014년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의 자신감이 높아지는 것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가장 직접적인 엔진이 될 것입니다.
-주택시장의 회복세는 지속될까요.
▦역사적으로 미국의 주택가격과 소득을 비교하면 항상 일정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2004~2006년 버블이 발생하면서 이 추세가 깨졌습니다. 급격한 주택버블 붕괴는 이러한 추세의 복원과정이었습니다. 이제 주택가격은 바닥을 쳤습니다. 소득은 비록 느리지만 개선되고 있고 모기지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입니다. 수요자들의 주택구매 여력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죠. 반면에 주택재고는 줄었습니다. 주택시장 역시 회복세를 이어가면서 소비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새로운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FRB의 통화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금융위기가 일어났을 때 FRB에 벤 버냉키 의장이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는 대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리스크를 진단했고 이를 매우 공격적으로, 그리고 유연하게 대처했습니다. 한마디로 훌륭한 소방수였죠. 그러나 지금은 위기는 지나갔습니다. 금융 시스템은 재정비됐고 은행들은 건전화됐으며 기업이나 개인 모두 신용만 있다면 얼마든지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양적완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논란이 커지고 있죠.
FRB는 적어도 앞으로 5년 이상 현재의 이례적인 통화완화 정책(current program of emergency monetary program)을 지속할 것으로 봅니다. FRB는 최근 실업률이 6.5%를 웃돌거나 인플레이션이 2.5%를 밑돌 때까지 제로금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시장에 제로금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겠지만 반면에 통화정책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정치로부터의 독립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입니다.
-글로벌 경기로 넘어가죠. 2012년에 유로존 위기가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였습니다. 2013년은 어떨까요.
▦유럽의 금융 리스크와 유럽 경제를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우선 금융 리스크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해 8월 "유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한 것이 기점이었습니다. 유럽의 중심국가인 독일 역시 문제가 된 국가들에 대한 조건부 지원에 동의했죠. 유로존 붕괴에 대한 우려는 사라졌습니다. 그리스 국채투자로 헤지펀드들이 엄청난 수익을 거둔 것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유로존 경제는 리세션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물론 2012년보다 하강폭은 둔화될 것입니다. 네거티브 하지만 덜 나쁜 상황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독일 등 탄탄한 기반을 가진 국가들은 리세션에서 빠져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시진핑 지도부가 출범한 중국이 내수부양을 통해 세계 경제성장에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나이키, 프랑스 샴페인 업체 등의 수익에 중국 시장이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중국 경제에 대한 일종의 착시가 있다고 봅니다. 중국이 주요 경제국가로 커진 것은 맞지만 미국처럼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팽창적인 통화정책을 펼치면서 환율전쟁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새 일본 정부가 풀 죽은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엔화약세를 유도하고 인플레이션 목표를 상향 조정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영란은행(BOE)을 이끌게 되는 마크 커니는 인플레이션 목표를 아예 GDP 목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중앙은행들이 이처럼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는 것은 현 여건 하에서 인플레이션 위협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 안정이라는 중앙은행들의 종래의 기본정책이 달라지는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팽창적인 통화정책은 통화가치 하락과 직결됩니다. 중국도 강력한 환율정책을 가지고 있죠. 환율을 둘러싼 세계의 갈등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의 엔 약세는 한국에도 큰 관심사 인데요.
▦맞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정부를 출범했거나 조만간 출범합니다. 한국 경제에서 새 정부의 정책보다 더 큰 변수는 일본이 될 것입니다. 엔화는 일본의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고평가돼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엔 약세가 된다면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은 높아질 것입니다. 이는 한국에 불리한 여건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한해는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까요.
▦지난 30년 동안 이어져온 미 국채의 강세장(bull market)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채권투자에 대한 수익이 낮아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저는 투자자들에게 투자 대상을 다양화하고 지역도 다변화해야 한다고 늘 말하고 있습니다. 2013년 투자와 관련해 더 이상 최악의 시나리오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유로존 붕괴 위기,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투자전략을 짜야 할 것입니다.
■호이는 누구
운용·분석 모두 거친 월가 40년 베테랑
균형있는 시각 장점
리처드 호이는 뱅크오브뉴욕멜런(BNY멜런)과 투자회사인 드레퓌스의 수석이코노미스트로 40년 이상 월가에서 펀드매니저와 이코노미스트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활동해온 베테랑이다.
BNY멜런은 지난 2007년 뱅크오브뉴욕과 멜런파이낸셜코퍼레이션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뱅크오브뉴욕은 1784년 알렉산더 해밀턴에 의해 설립돼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BNY멜런의 자산은 1조4,000억달러, 수탁 규모는 27조7,000억달러에 달한다. 수탁 규모로는 세계 최대 은행이다. 직원은 4만9,000명.
호이 이코노미스트는 1970년대와 1990년 두 차례에 걸쳐 펀드를 운영했고 프루덴셜ㆍ드렉셀번햄램버트 등의 투자회사에서 투자전략 및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경력을 쌓았다. 이코노미스트로도 20년 이상 경력을 쌓았다. 1991년 드뤠퓌스의 수석이코노미스트를 맡았으며 199년 멜런파인내셜코퍼레이션의 수석이코노미스트를 겸임했다. 이후 BNY와의 합병 이후 이 회사의 수석이코노미스트로 미국과 글로벌 경제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펀드 운용은 호흡이 짧은 반면 이코노미스트의 영역은 긴 안목이 필요하다"며 "두 영역을 고루 경험한 까닭에 경제와 시장에 대해 보다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일대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뉴욕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호이 이코노미스트는 인터뷰 등을 통해 개인적인 견해보다 리포트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을 선호해 언론 노출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경력 외에 개인신상에 대한 정보를 밝히는 것을 사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