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사람]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

"디퓨전 파워가 중동혁명 불러…이집트등민주국가 발전 기대"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9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 연구실에서 중동 민주화 혁명 이후 세계 정세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소프트 파워'의 창시자인 그는 재스민 혁명을 트위터 등 정보통신 발달에 따라 소수 엘리트가 가진 권력이 다수로 분리되는 ' 권력의 분산(diffusion power)' 과정으로 설명했다. 케임브리지=이학인특파원


카다피 '이성적 판단' 힘들어 리비아 내전 장기화 우려
사우디는 왕족 정통성·적법성 확보… 정권 안정적으로 유지할 듯 중동국과 달리 고성장 지속… 中은 재스민혁명 가능성 제로
한·미·일 공동 대응 통해 北에 '변해야 대화' 인식 심어야
세계적 석학인 조지프 나이 교수는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서 시작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바람이 이 지역의 정치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독재와 왕정에 염증을 느낀 중산층이 정보통신의 발달로 단결할 수 있게 된 것이 이번 중동혁명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재스민 혁명을 정보통신의 진전으로 국가권력이 소수의 엘리트들로부터 일반 대중으로 분산되는 '디퓨전 파워(diffusion power)'로 설명했다. 나이 교수는 미국이 이번 중동사태로 강력한 우방이었던 이집트와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지만 기존의 중동정책을 유지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경제적 성취가 이어지는 한 민주화 바람이 혁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진단했다. 일본의 사상 최악의 지진과 관련해 그는 "일본 국민은 강한 국민"라며 재앙적 위기를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은 천안함 격침, 연평도 포격 등 일련의 북한 도발행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점을 후회하고 있다며 중국 내부에서 '중국이 북한에 외교적으로 납치당했다'는 자성론이 대두되고 있다고 전했다. 나이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9일 케임브리지 하버드 연구실에서 진행됐으며 리비아에 대한 다국적군의 군사개입이 시작된 19일 e메일을 통해 그의 의견을 추가로 받았다. -무아마르 카다피를 수차례 만났는데, 그는 어떤 인물인가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카다피를 가리켜 매드 도그(mad dog)라고 한 것처럼 이상한(strange)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리비아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또 지적이라는 인상을 풍기면서도 어떤 때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습니다. 지금 벌이는 일들을 보면 그가 현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빨리 권좌에서 물러나는 게 정상이지만 그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것 같지 않습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서 시작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바람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간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새로 쓴 책에서 '디퓨전 파워(소수의 엘리트로부터 일반 대중에게 권력이 분산된다는 의미)'를 언급했는데 중동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중요한 예가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중동 국가 국민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억압을 겪으면서도 독재와 극단적인 종교정권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트위터ㆍ페이스북 등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의 발달은 중산층이 단합하고 조직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디퓨전 파워로 이번 혁명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중동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봅니까. ▦하나의 흐름이 중동 지역을 지배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각각의 국가들이 개별적인 정치체제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선 튀니지와 이집트는 혼란에도 불구하고 민주국가로 발전해나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반면 리비아는 내전상태로 빠질 공산이 큽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주요 국가들의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일부 왕정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이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큰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상황은 다릅니다. 요르단 같은 왕정국가는 일부 개혁적인 조치들을 취하겠지만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것으로 봅니다. 사우디 왕족들은 상당한 정통성과 적법성을 확보하고 있고 국민을 달랠 수 있는 오일머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중동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찾는다면. ▦이번 혁명은 지난 1848년의 유럽혁명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중산층은 억압적인 구체제에 저항했고 자유주의 물결이 영국ㆍ독일ㆍ이탈리아 등 전유럽을 휩쓸었습니다. 이번 중동의 혁명도 이 지역 정치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나요. ▦미국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중동정책을 유지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집트로부터 과거와 같은 강력한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만약 사우디아라비아 상황이 급변한다면 미국도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일본의 지진이 동아시아 국가의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까. ▦일본의 대지진은 여러 면에서 큰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이중 국제적으로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열기를 크게 감소시킬 것이라는 점이 현재로서는 두드러집니다. -일본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일본 국민은 강한 국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위기도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시위 움직임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했는데요. ▦중국에서 재스민 혁명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다. 알다시피 중국 정부는 효율적으로 국민들을 통제해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가 이집트 등 중동 국가와 달리 고성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국 국민들은 부정ㆍ부패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미래를 낙관하고 있습니다. -올 1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를 계기로 'G2'로서 중국의 지위가 확고해진 것 아닙니까. ▦미국과 중국을 일컬어 G2라고 부르는 것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기후변화, 글로벌 금융안정 등 글로벌 이슈를 다루기 위해서는 유럽 등 다른 주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중국이 G2냐 아니냐는 것보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가 제시한 것처럼 국제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responsible stakeholder)'로서의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느냐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만약 중국이 국내 정치체제를 개선하고 국제 문제 해결에 보다 적극 나선다면 이는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될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계인 게리 로크 상무장관을 중국대사에 임명했는데요. 그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나요. ▦로크는 정치적인 경험도 많고 중국에 대한 경제ㆍ비즈니스에 풍부한 식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의 중국대사 임명은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미국의 개방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현명한 선택입니다. 로크는 위안화 절상, 지적재산권 보호 등 경제 이슈에 대해 중국 측을 압박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중국이 인근 국가들에 공세적으로 나가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도 그의 임무입니다. -중국의 외교, 특히 북한에 대한 외교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중국이 남중국해나 센카쿠 분쟁에서 이웃 국가들에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대응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 남한에 대한 북한의 도발을 다루는 과정에서 큰 실수(huge mistake)를 범했습니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두려워한 나머지 북한에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왔는데 그것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중국이 북한에 더 이상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흔히 중국은 북한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합니다. -1930년대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은행에서 100달러를 빌리면 은행이 당신을 지배하겠지만 수억달러를 빌리면 당신이 은행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약자의 힘(power of weakness)'입니다. 중국은 식량ㆍ연료 등 그들이 가지고 있는 레버리지를 북한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중국인 친구는 나에게 '중국이 북한에 외교적으로 납치당했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무엇보다 한국과 미국ㆍ일본의 공동 보조가 중요합니다. 북한은 늘 한국과 미국을 분리시키려고 해왔습니다. 일관되게 북한에 행동이 변해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전쟁 우려가 제기되는데 한국과 미국ㆍ중국 모두가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또 다른 전면전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스마트 파워'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그리고 한국에 대해 조언한다면.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뛰어난 성공 스토리 중의 하나입니다. 196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은 가나와 같았습니다. 지금은 '주요20개국(G20)' 국가이며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경제적인 성취와 민주적인 정치체제라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와 상당한 수준의 군사력(하드 파워ㆍhard power)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합친 게 스마트 파워입니다. 정책적으로 조언하자면 스탈린주의의 유산인 공산독재체제를 갖춘 북한에 대해 정책적 인내를 가지고 대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조급하게 대화하고 지원해서는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외교정책 근간 '스마트 파워' 주창
■나이 교수는 美외교에 큰 영향… 클린턴 정부선 국방부 차관보등 역임, 이론과 실제 겸비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교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 근간인 '스마트 파워' 이론의 주창자이다. 그는 지난 1970년대 국제정치이론인 '상호의존론'을 정립했다. 이어 군사력과 경제력을 의미하는 하드 파워와 문화ㆍ가치ㆍ대외원조ㆍ국제교류 등을 의미하는 소프트 파워로 구분하고 이를 조화시킨 것이 스마트 파워라고 주장했다. 빌 클린턴 전 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 및 국가정보위원회 의장 등을 역임해 이론과 실제를 겸비했다. 현재 미국 외교에 가장 영향을 미친 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이 교수는 1937년생으로 미국 프린스턴대를 졸업했으며 하버드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4년부터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케네디스쿨 학장도 지냈다. 7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권력의 미래'를 출간하고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강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약력 ▦1937년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대 졸업, 하버드대 정치학박사 ▦1964년 하버드대 교수 ▦국방부 차관보 ▦저서 '권력의 미래(2011)' '조지프 나이의 리더십 에센셜(2008)' '소프트 파워(2004)' '제국의 패러독스(2002)'
한 국가의 외교력·문화적 역량등 '보이지 않는 힘'
■소프트 파워란 재스민 혁명 이끌어낸 정보기술… 지진참사에 보여준 日질서등 총칭
군사·경제력등 하드 파워와 조화… 21세기엔 '스마트 파워'가 중요
지난 15일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일본 대지진은 매우 비극적이지만 일본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키워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교 전문 칼럼니스트인 사이먼 티스덜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통해 "리비아 사태에 서방이 개입하는 최고의 수단은 소프트 파워"라고 주장했다. 외교적 협상과 인도적 차원의 지원이 군사적 개입보다 앞서야 한다는 게 티스덜의 설명이다. 현재 국제적으로 가장 큰 이슈인 일본 대지진과 리비아 사태에서 동시에 언급되는 나이 교수의 소프트 파워는 한 국가의 외교력, 문화적 역량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리비아 사태를 이끌어낸 서양의 정보기술(IT), 대지진 이후 일본 국민들이 보여준 질서와 인내심 등도 소프트 파워로 볼 수 있다. 반대되는 용어는 경제력ㆍ군사력을 뜻하는 하드 파워(hard power)다. 나이 교수의 이론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공식석상에서 "중국은 소프트 파워를 키워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2009년 취임 당시부터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에 소프트 파워를 보탰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중동과 북한 등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경제력과 국방력으로 제어하려 했지만 실패한 바 있다. 나이 교수는 1990년에 출간한 저서 '리더일 수밖에 없는(Bound to Lead:The Changing Nature of American Power)'에서 이 용어를 처음 소개했으며 2004년의 저작 '소프트 파워(Soft Power:The Means to Success in World Politics)'에서 구체적으로 정립했다. 이후 나이 교수는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를 조화롭게 활용해야 한다는 '스마트 파워(Smart power)'를 주장했다. 20세기까지는 하드 파워가 중요했지만 21세기는 소프트 파워, 스마트 파워의 시대라는 게 나이 교수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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