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초 정치권은 기업들끼리 중복되는 사업을 정리하라며 재계를 압박했고 현대·삼성·대우·LG·SK는 그해 9월 '5대 그룹 빅딜' 방안에 합의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LG와 현대의 반도체 사업 합병. 두 기업 중 어느 곳이 합병 반도체 법인을 가져가느냐의 싸움에서 김대중 정권은 현대의 손을 들어줬다. 이 합병법인은 현재 SK하이닉스로 SK그룹의 든든한 캐시카우가 됐다.
국내에서 관심을 가장 끈 인수합병(M&A)으로 손꼽히는 현대자동차의 기아자동차 합병도 IMF가 낳은 빅딜이다. 현대차는 자동차 사업에 공을 들이던 이건희 회장의 삼성그룹과 치열한 경합 끝에 1998년 인수가격 1조1,781억원, 부채탕감액 7조3,800억원에 기아를 흡수했다. 비슷한 시기에 삼성과 대우는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를 맞교환하는 거래도 추진됐지만 결국 무산됐다.
당시 현대정유가 한화에너지를 사들이며 한화가 정유 사업에서 철수했고 항공 분야에서는 삼성·대우·현대가 통합법인(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철도차량 분야에서는 현대·대우·한진이 단일법인(현 현대로템)을 설립한 것도 IMF 빅딜의 주요 내용이다. 이 밖에 발전설비 분야의 경우 한국중공업·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이 사업을 단일화했으며 선박엔진은 삼성이 한국중공업으로 이관했다.
당시에는 외부 압력에 의한 빅딜이었지만 자율적인 빅딜도 있다. 두산은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그리고 2007년 무려 4조5,000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미국 중장비 기업인 밥캣을 사들였다. 2011년 SK텔레콤이 최태원 SK 회장의 지휘 아래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도 '신의 한 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