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자의 눈] 금융 선진국의 청문회

김인영 뉴욕 특파원중앙은행 총재가 청문회장에 들어서 의원들 앞에 섰다.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습니다. 주식시장은 지금처럼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의원들은 정중하지만 농담도 섞어가며 늙은 중앙은행 총재의 견해를 물었다. 그는 대통령의 공약대로 연기금의 주식투자가 이뤄지면 정부의 금융시장 개입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앙은행 총재가 의회 발언대에 서자 전문 케이블 TV는 생중계를 했고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은 일손을 놓고 그의 「말씀」을 경청했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제도이사회(FRB) 의장는 20일 올들어 처음으로 의회에 나갔다. 동부 명문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한 전문가 수천명이 달라붙어 말씀을 해석하느라 여념이 없다. 『경제가 좋다』는 대목에 신이 난 투자자들 때문에 뉴욕 증시의 다우 지수는 한때 폭등했다가,『주식시장이 걱정된다』라는 대목에서 주가는 다시 가라앉았다. 같은 날 한국의 중앙은행 총재도 국회 청문회에 섰다. 뉴욕에 전송된 한국신문들을 보면 의원들은 한국은행 총재를 심문하듯 질문했다. 엄포로 시작해 일문일답식 질문을 거치면서 중앙은행 수장을 곤경으로 몰아 넣었다. 그린스펀도 상원과 하원을 합쳐 정기적으로 1년에 4번 의회에 불려가고 현안이 있을 때 수시로 출석, 의견을 제시한다. 지난해 헤지펀드 사건때 그린스펀은 곤욕을 치렀다. 물론 의원들은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이 금융질서에 어떠한 영향이 올 것인가를 날카롭게 질문했지만 한번도 중앙은행 총재에 대한 정중함을 잃지는 않았다. 미 의원들은 중앙은행 총재를 불러 거시정책 전반의 인식을 묻고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을 때는 금융정책의 역효과를 날카롭게 따진다. 반면 한국 청문회는 거의 인신공격에 가깝다. 의원들에게 중앙은행 총재가 면박을 받는데 국내외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그를 신뢰할 수 있을까. 한국의 외환위기는 후진적 금융구조에서 발생했다. 청문회가 금융위기의 원인을 밝혀내고, 보다 선진적인 금융개혁의 초석이 되고자 한다면 금융선진국의 청문회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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