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선진국의 잇따른 양적완화에 대해 환율방어에 나서겠다며 엄포만 놓던 중남미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무력행사에 들어갔다.
'선진국발 핫머니 유입→자국 화폐가치 상승→수출경쟁력 하락' 우려가 고조되자 역내 거의 모든 국가들이 기준금리를 내리거나 달러매입을 늘리고 국부펀드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국 통화 방어에 나서고 있다. 미국ㆍ유럽ㆍ일본을 주축으로 벌어지던 전세계 환율전쟁의 전장이 중남미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다.
루이스 카스티야 페루 재무장관은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솔(페루화폐)을 찍어 달러로 교환해 세계은행(WB) 등에 진 20억달러의 빚을 올해 1ㆍ4분기 안에 조기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보유한 달러로 빚을 직접 갚지 않고 자국 화폐를 찍어 시중의 달러를 흡수한 뒤 빚을 갚는 데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카스티야 장관은 "국유기업에 해외채권 발행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하고 국부펀드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에 따른 달러 유입을 막고 국부펀드를 이용해 외화를 벌어들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재 페루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매일 4,000만달러를 매수하고 있음에도 달러 대비 솔 가치가 올 들어서만도 16%나 절상되자 이 같은 강수를 둔 것이라고 평가했다.
콜롬비아는 기준금리 인하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앙은행은 28일 기준금리를 4%로 0.25%포인트 내렸다. 이는 현재 중남미 국가의 기준금리 중 가장 낮은 것이다. 또한 외환시장에서 매일 3,000만달러를 매입해 오는 2월부터 5월까지 총 30억달러를 시중에서 거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화페가치가 달러 대비 10% 가까이 뛰면서 커피ㆍ바나나ㆍ꽃 등 주요 수출품의 경쟁력이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이외에도 코스타리카 정부는 최근 외국인 투자가의 이익금에 매기는 세율을 종전의 8%에서 38%로 대폭 늘리는 새로운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펠리페 라라인 재무장관 또한 지난 26일 로이터에 "중앙은행의 외환 개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조만간 외환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을 시사했고 멕시코도 이달 물가상승률이 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해 기준금리 인하가 유력하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이처럼 중남미 국가들이 글로벌 환율전쟁에 대응해 실탄을 본격적으로 쏟아 붓는 것은 자국 화폐가치 상승세가 한계점에 도달했지만 선진국의 양적완화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남미에 유입된 국제투자금은 '핫머니 시대'라 불릴 정도로 역내에 많은 자금이 몰렸던 2008년에 비해 30%나 늘었다. 게다가 국제금융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중남미로 흘러 들어갈 자본은 지난해보다 5.6% 늘어난 3,210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ㆍ일본을 중심으로 연일 막대한 돈이 쏟아지고 그동안 잠잠하던 중국도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주요 신흥국인 중남미까지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면서 글로벌 환율전쟁은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다음달 중순 러시아에서 열릴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환율 문제가 본격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로이터는 역내 1위 경제대국인 브라질의 경우 다른 국가들에 비해 물가상승률이 높아 기준금리를 내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29일 보도했다. 올해 중남미로 유입할 금액의 상당 부분이 브라질과 멕시코로 유입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크게 높아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