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 등 기업들의 '합법적'인 조세회피 수단을 제공하는 국가들이 막대한 해외자금을 빨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들 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조세회피처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는 한편으로 국내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법인세율 인하에 동참하는 국가들이 속속 늘어나면서 조세회피처 논란이 법인세 인하 경쟁으로 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 지역으로 알려진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로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지난해 말 현재 총 5조8,000억달러에 육박하면서 각국의 법인세 정책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고 29일 보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네덜란드로 3조5,000억달러, 룩셈부르크로 2조2,800억달러의 FDI가 유입됐다. 이들 국가의 FDI 합계는 미국(3조1,000억달러), 영국(1조3,000억달러), 독일(9,800억달러)의 FDI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실물경제로 투자된 돈은 네덜란드가 5,730억달러, 룩셈부르크는 1,220억달러에 그친다. 나머지 5조달러 이상은 다국적 기업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E)와 관련된 자금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정책결정자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을 활용하는 기업들을 탓할 수는 없다"며 낮은 세율 등으로 기업들의 조세회피를 부추기는 국가들의 개혁을 촉구해왔다. 그는 최근 기자회견에서도 "허술한 구멍을 이용하는 세금전략은 대부분 합법적이지만 조세수입과 조세주권ㆍ조세정의에는 심각한 위험요인이 된다"고 경고했다.
다국적 기업들이 세율이 낮은 국가와 다른 조세회피 수단을 동원해 수익을 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유럽 재정위기 등 각국의 재정악화가 불거지면서 막대한 수익을 내면서도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는 기업들의 조세회피가 도마위에 올랐다. 구글이 지난해 20억달러 규모의 소득세를 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스타벅스와 페이스북 등도 수익에 비해 턱없이 적은 세금을 내 비난을 샀다.
최근 들어서는 개별 기업들을 겨냥한 비난이 기업자금 유치를 위해 이들의 합법적인 세금 회피를 도와주고 있는 네덜란드나 아일랜드ㆍ룩셈부르크 등 일부 선진국 정부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세회피처와 투자유치를 위해 합법적인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국가 간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가운데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경쟁적인 법인세 인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지난주 포르투갈이 24%인 법인세율을 인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현행 35%인 법인세율을 낮추기 위해 기업 세제혜택을 없애는 방안을 제안했다. 영국은 오는 2015년부터 주요20개국(G20) 가운데 가장 낮은 20%의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OECD는 조금이라도 세금을 덜 내려는 기업들을 포섭하느라 각국이 협력을 이루지 못한다면 "법인세율이 바닥을 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 집행위원회(EC)도 수익을 내기 위해 낮은 세율을 찾아가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각국 정부의 세수에 연간 수백억달러의 손실을 입히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