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의 어린 나이로 오직 바둑 하나에 인생을 걸고 지난 82년 일본으로 건너갔던 조선진(29)9단. 그가 17년만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고 3대 타이틀 중의 하나인 혼인보(本因坊)전을 획득하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조선진은 6일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열린 혼인보전 결승7번기 제6국에서 일본 바둑계 제1인자인 대선배 조치훈9단을 163수만에 흑불계로 꺾고 종합전적 4승2패로 타이틀을 차지했다.초반 결정적인 실착을 범한 조치훈은 강수를 거듭 두며 역전을 노렸으나 전세를 뒤집지 못했다. 이로써 일본 랭킹 1~ 3위 기전인 기세이(棋聖· 우승상금 3,300만엔) 4연패, 메이진(名人·2,500만엔) 3연패, 혼인보(2,000만엔) 10연패라는 전무한 기록으로 「3년 연속 대삼관(大三冠)」으로 군림하고 있는 조치훈은 한국인 후배에게 무너져 1인자의 아성을 위협받게 되었다. 더불어 단일 타이틀 11연패라는 기록경신도 무산됐다. 7일 오후 일본 도쿄시 인근에 살고 있는 조선진9단과 국제전화를 통해 우승 소감을 들어봤다.
-축하한다. 소감을 말해달라.
처음으로 도전자가 되었고, 존경하는 조치훈선생과 대국을 벌였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대국 전에는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평이었다. 승리의 요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 행운으로 생각한다. 처음 제1국을 패한뒤 한번 이기기가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1국1국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뿐이었다. 우승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번 대국에서 조치훈선생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던게 우승 이유다.
-이번 타이틀 획득과정에서 어려운 고비가 있었다면.
처음엔 1승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다 3대2로 앞서니까 갑자기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타이틀 획득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저 운이 따랐다. 마지막 대국에서도 내용면에서는 졌는데 조치훈선생의 실수로 이겼다.
-상대였던 조치훈9단을 어떻게 보는가.
어려서 일본으로 건너올 때부터 존경해왔다. 실력에서도 많이 차이가 난다. 후배로서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조치훈선생은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인간적으로 성숙해진 것같다. 마치 큰나무가 큰그늘을 만드는 것처럼 후배들을 잘 감싸안아준다.
-그래도 한국기사들은 예전의 조치훈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옛날에는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귀신같이 수를 읽어냈는데 요즘엔 시간에 쫓기면 실수가 많이 나온다.
체력이 떨어진 탓이다. 10년간 현장에서 피말리는 도전기를 두다보니 피로가 많이 쌓인 것 같다. 그게 마지막의 집중력 하락으로 나타난다.
-아직 자신만의 독특한 기풍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철저한 실리주의자도 아니고, 호방한 세력 바둑도 아니다. 대신 균형감각이 뛰어나고, 매번 최선의 수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도 그렇게 판단한다. 이창호는 데뷔 때부터 신산(神算)이란 말을 들었는데 나는 특별한 장점이 없다. 조훈현·유창혁·이창호 등은 천재이다. 나는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정도의 재능밖에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아직도 내가 왜 이겼는지 모르겠다.
-세계최강의 기사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한국에선 이창호를 꼽는다.
모르겠다. 그러나 성적만으로는 (이창호를 최강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초일류 기사들은 누구나 화려한 바둑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배울 점이 있다.
-혼인보전에서 한국인끼리 결승전을 벌여 일본기사들의 자존심이 많이 상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국언론에서 그렇게 보도한다고 하던데 그렇지 않다. (NHK방송에서 중계를 하지 않았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도) 원래 혼인보는 방송에서 중계를 안한다. 조치훈선생이 워낙 막강하니까 대부분의 일본기사들이나 바둑팬들이나를 응원해줬다.
-국제대회에 출전해 한국기사들과 겨뤄볼 계획은.
물론이다. 혼인보가 됐으니까 내년에는 한국·중국의 국제적인 스타들과 겨룰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혼인보 자격이 있는가싶기도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 실력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기사가 되고 싶다. /최형욱 기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