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초대 총재에 진리쥔(66·사진) 전 중국 재정부 부부장(차관급)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또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실크로드) 건설책임자에 장가오리 상무 부총리가 임명됐다. 시진핑 정부가 신경제구상으로 내세운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아시아는 물론 유럽까지 아우르게 된 AIIB를 등에 업고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다.
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터(SCMP)와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 등에 따르면 AIIB의 초대 총재로 현재 AIIB 임시 사무국을 맡고 있는 진 전 부부장이 후보로 올랐다고 전했다. 왕쥔 중국 국제경제교류센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분 구조상 중국에서 첫 총재를 맡을 것이고 국제금융기구 경험과 중국 정부 내 신뢰도를 고려하면 진 전 부부장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진 총재 후보는 중국 정부 주도 1세대 미국 유학파 공무원이다. 베이징외국어학원 영어과를 졸업한 후 지방정부와 재정부 등에서 일을 하다 재정부 외사 부처장을 맡다 보스턴대 경제학 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재정부 국제금융, 세계은행(WB) 담당 국장을 거쳐 1998년 재정부 부부장을 맡았으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를 역임했다. 환구시보는 "진리쥔이 AIIB의 초대 총재로서 충분한 국제금융 경험을 가진 인물"이라며 "WB나 일본이 주도하는 ADB와 AIIB의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진 총재 후보가 AIIB 총재로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와 시스템 구축이라고 지적했다. 자오창 중국전략연구센터 연구원은 "AIIB 총재는 52개국에 달하는 회원국들의 이해관계를 투명하게 조정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패권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며 "합창단의 지휘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AIIB의 실제 투자 계획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ANZ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1,000억달러로 시작하는 AIIB가 초기에는 연간 3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집행할 것으로 예측했다. 루리강 ANZ 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각 세계개발은행의 자본금과 대출금 비율을 감안하면 연간 300억달러가 아시아 인프라 투자에 투입될 것"이라며 "이는 전체 아시아 인프라 수요의 4%에 불과하지만 빈곤시설 투자 등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또 일대일로 건설 책임자로 장 부총리를 임명하며 본격적인 실무작업에 들어갔다. 이날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일대일로 '공작(업무)영도소조'의 조장에 정치국 상무위원인 장 부총리가, 4명의 부조장에는 왕후닝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왕양 부총리, 양징·양제츠 국무위원이 각각 임명됐다고 전했다. 앞서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 영도소조 출범을 발표하며 이들 4명을 참석자로만 발표하고 구체적 직책은 발표하지 않았다. 중국 경제매체인 왕이재경은 이들 중 왕후닝을 '일대일로의 브레인'이라고 소개했다. 왕 주임은 시 주석의 왼팔로 불리며 일대일로 등 시진핑 정부의 굵직굵직한 정책의 큰 그림을 직접 설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장 부총리와 왕 주임이 시 주석이 주도하는 중앙개혁전면소조에 참석하고 있는 만큼 일대일로도 장 부총리가 실무 사령탑을, 나머지 4명은 각각의 현 직책과 연관된 업무를 맡는 구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왕양 부총리는 국무원에서 경제무역·농업·빈곤퇴치·대외원조 등을 담당하고 있다. 양징 국무위원은 각 부처와 위원회, 지방정부와의 협조와 조율을 책임지고 있으며 양제츠 국무위원은 외교업무 및 국내 정책과 외교 정책 간의 조율을 담당하고 있다.
연합조보는 일대일로 건설과정에서 미국 등과 주변국이 보내는 '패권주의'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롼쭝쩌 중국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일부 국가는 중국 발전전략의 배후에 군사 및 지역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 여부를 우려하고 있다"며 "세계가 아시아에 집중하고 다시 아시아는 중국에 집중하는 만큼 서로 호혜공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