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D-3] 가격 급등락 위험 큰데… 기준가 설정이 되레 불안 조장 우려

3개월 평균이 한계 넘으면 정부 시장개입 한다지만

투기세력 등 집중공격으로 비축물량 소진 가능성 커

77% 사전할당 5개 업종이 가격결정권 쥐는 구조도 시장 충격 키우는 요소로

한 대기업 공장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발전업체를 포함한 525개 의무할당기업은 오는 12일부터 한국거래소를 통해 배출권을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게 된다. /서울경제DB


오는 12일 본격 시행되는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기대되지만 가격 급등락 등 시장 위험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기준가격 설정취소 등 가격 불안성을 높이는 요소를 제거해야 시장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현재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경우 발생되는 미래 배출량)의 30%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올해부터 배출권거래제를 본격 시행한다. 지난 2012년 목표관리제를 시행했지만 배출권거래제의 장점이 더 많아 제도를 전환한 것이다.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 감축활동으로 배출권 허용량이 남는 기업이 부족한 기업에 돈을 받고 배출권을 팔도록 한 제도다. 목표관리제와 비교하면 배출권거래제는 기업들의 비용 부담은 줄이는 대신 효과는 큰 것으로 평가된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유관 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배출권거래제에서 온실가스 감축비용이 44~68%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고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보다 앞서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한 유럽연합(EU)의 경우 2005년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후 기업들의 저탄소 특허신청 건수가 2배가량 증가하는 등 감축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배출권거래제는 12일 한국거래소에서 거래시장이 개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525개 의무할당기업은 주문 프로그램을 설치해 배출권을 직접 사고팔 수 있게 된다. 유럽 등 다른 나라의 사례에 비춰봤을 때 초기에는 기업들의 거래유인 부족과 관망세 등으로 거래가 잘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거래가 부진한 가운데 일부 세력이 호가를 높게 부르면서 가격이 급등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정부가 기준가격을 설정한 것이 오히려 시장의 가격 불안성을 높이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기업 부담을 줄이고 시장 안정화를 위해 배출권 톤당 기준가격을 1만원으로 지정해놓고 3개월 평균가격이 4,000~1만6,000원 범위를 벗어날 경우 시장에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가격 대신 정부가 인위적인 한계선을 설정해놓은 것이 투기세력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령 A기업이 정부 기준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계속 호가를 제시하며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럴 경우 정부는 시장안정화를 위해 물량을 내놓으며 가격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시장의 공세가 강할 경우 정부가 비축물량을 소진할 위험성이 있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 세력들은 정부가 기준가격을 지켜야 한다는 약점을 알고 공세에 나설 수 있다"며 "정부가 인위적으로 기준가를 설정한 것은 시장의 가장 큰 위험요소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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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시장 주도세력이 가격 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 것도 위험 요소로 판단된다. 배출권은 현재 사전 할당량(15억9,772만톤) 가운데 46%가 발전 업계에 할당됐다. 발전 업계가 주식시장의 외국인처럼 수급주체로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김태선 에프앤가이드 글로벌탄소배출권 대표이사는 "발전업계 등 상위 5개 업종의 사전할당량이 전체의 77%에 달해 가격을 조정하는 '프라이스 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며 "가격 결정권을 손에 쥔 업종에서 매도 혹은 매수 등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시장은 충격을 받을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또 내년 6월 배출권의 제출 시한을 앞두고 업체별 과부족분에 대한 거래가 집중되는 것도 시장의 불안 요소로 지목된다. 지난해 12월 525개 기업별로 할당된 배출권은 내년 6월 말에 실제 배출량에 대한 명세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할당량보다 배출량이 많은 기업은 배출권 거래시장에서 배출권을 매입하거나 정부에 과징금을 내야 한다. 결국 기업들은 명세서 제출 시점을 앞두고 집중적으로 거래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계에서 기업들의 배출권 할당이 지나치게 적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업체들이 대거 배출권 매수에 나설 경우 시장의 혼란은 커질 수 있다. 김 대표는 "내년 3월부터 6월까지 거래가 집중될 경우 가격이 급등할 위험성이 있고 정부의 기준가격 관리계획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다"며 "올해부터 정부가 물량을 조금씩 공급해 매수세를 분산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시장 조성자로 지정한 산업은행·기업은행 등 공적 금융기관들에 권한을 제대로 이관하지 않은 점도 시장의 혼란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초기 시장 조성을 위해 산업은행 등이 호가를 제시하도록 역할을 부여해 거래를 유도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 공적 금융기관들이 배출권 물량을 하나도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호가를 제시하는 것은 배출권거래제에서 금지한 '공매도' 행위가 될 수 있다. 물건을 팔 사람이 물건도 없이 팔겠다는 구호만 외치는 상황이어서 시장 조성 기능이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김 대표는 "시장의 불안을 자극할 요소가 상당히 많은데 정부의 시각이 지나치게 안일하고 준비가 덜 돼 있다"며 "자칫하다가는 정부가 가격통제력을 상실하는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강동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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