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부패의 그늘 공공기관 노사 유착] 매출 수억원대 구내식당·자판기 등 이권사업 노조에 넘겨

대한적십자, 노조 운영비 年 7,000만원 지원

파업 등 문제땐 기관장만 불이익 … 달래기 급급


이명박 정부 시절 한 공공기관장 자리에 도전했던 전직 고위공무원 출신 A씨는 섬뜩한 경험을 했다. 자신이 3배수로 압축된 기관장 후보군으로 거론된 후 해당 기관의 노동조합 일부 간부가 은밀히 자신의 뒤를 캐고 다니더라는 이야기를 측근을 통해 전해 들은 것이다. A씨는 그 기관장 경쟁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기관장에 선임되더라도 그런 식으로 노조에 약점을 잡혀 취임 초부터 고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그러진 공공기관 노사관계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기업보다 더 공정하고 투명한 노사관계를 정립해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기관들이 도리어 민간보다 더 구태적인 관행에 젖어 있는 셈이다. 공공기관장들은 노조 앞에서 떳떳한 자격을 갖춘 경우라도 맞서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노조가 파업 등으로 강경 대응하며 물의를 일으키면 정부는 그 관리책임을 물어 문책을 하는 등 기관장 평가시 불이익을 줘왔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공공기관장들이 일부 구태의연한 노조에 맞서기보다는 적당히 달래며 갈등이 촉발되지 않도록 쉬쉬하고 지내올 수밖에 없었다. 적지 않은 공공기관들이 노조와 밀월하기 위해 유착에 가까운 이권 배분, 금전 지원을 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정책당국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진이 노조에 매년 필요경비 등 거액의 운영비를 무상 지원하고 각종 이권 사업을 맡기면서 적당히 '누이 좋고 매부 좋다' 식으로 서로의 문제점을 넘겨왔다는 뜻이다.


공시 내용을 뜯어보면 근래까지 11개 정부 산하 공공기관들은 노조에 운영비를 대줬다. 특히 광해관리공단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노조에 매년 적게는 5,000만여원에서 많게는 7,000만원대에 이르는 운영비를 원조해왔다. 그나마 나머지 기관들은 최근 2~3년간 원조비 지급을 중단하기는 했으나 그 이전까지만 해도 연간 수천만원씩 경비를 대주는 것을 예사로 여겼다. 대한적십자사의 경우 2009년과 2010년에는 연간 원조액이 각각 7,360만원, 7,600만원에 이르렀고 2011년에서야 연간 5,000만원대로 낮아졌다. 시설안전공단·원자력안전기술원 등도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한 해 5,000만~6,000만원 안팎의 큰돈을 노조에 쥐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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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처럼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은 원조규모라도 정확히 알 수 있다. 반면 공공기관이 자체 영리시설을 노조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간접 지원할 경우 정확히 노조의 주머니에 수익이 얼마나 돌아가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구내 식당·매점·자판기 등의 시설이나 장소를 노조에 맡기고 수익을 가져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 중 19곳이 이 같은 방식으로 노조를 지원해왔다고 공시하고 있다.

한 공공기관 재무담당자는 "직원들만 이용하는 소규모 공공기관 매장이라면 수익금이 크지 않겠지만 직원 수가 많거나 일반인들의 출입이 잦은 공공기관이라면 구내 식당이나 매점·자판기 등으로 얻는 연간 매출이 수억원 이상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국립대학 및 부설병원과 같은 시설은 일반인들의 이용이 많아 수익이 짭짤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노조에 대한 운영비 지원은 부당노동 행위로 간주해 법원이 사용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다. 반면 공공기관의 구내 매점·식당·자판기 등 영리시설은 법적으로 통제할 근거가 없다. 이들 시설은 특성상 준국유재산이지만 등기부등본상으로는 국가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밀실 위탁계약 등을 금지하고 최고가공개입찰 등을 원칙으로 하는 국가계약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설명이다.

그나마 장애인복지법이 공공기관이 자판기·매점 등을 위탁할 경우 장애인에게 우선 기회를 주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강제력이 없는 권고 조항에 불과하다. 현금이 아니라 물품이나 시설 등을 제공한 경우라도 특혜성 등이 인정되면 부당 노동행위로 간주하겠다는 게 고용노동부 당국자의 설명이지만 이 역시 노조가 법리적으로 따지며 송사를 하면 처벌 여부를 장담하기 어렵게 된다. 정부가 최근 추진한 공공기관 정상화 관련 지침에서도 조합 운영비 지원이나 영리시설 위탁을 문제 삼는 조항은 없었다.

이번에 노조 운영비 지원이나 영리시설 위탁이 드러난 30개 공공기관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 중에서는 사실을 숨기고 공시를 안 한 곳이 있을 수도 있고 아예 공시 대상에서 제외된 지방공기업 등의 구태는 더욱 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사 유착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과 더불어 범부처·범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산하 기관 실태조사가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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