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완(왼쪽)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관리를 강조한 것을 계기로 물가관계장관회의는 매주 금요일마다 열리게 된다. /이호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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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6일 발표한 '7ㆍ26 물가대응방안'은 행정력보다는 소비자의 힘으로 각종 제품과 서비스의 시장가격 거품을 빼겠다는 방침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담합이나 과도한 재고물량 폐기 등 가격 거품을 조장하는 유통 단계 부조리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민간업자들의 팔을 비튼다는 역풍을 피하면서 소비자들의 힘을 빌려 간접적으로 부당 가격을 바로잡겠다는 일종의 '쓰리 쿠션' 전략으로 풀이된다. 차관 단위 기존 물가대책 회의는 '정부에 의한 기업 비틀기' 대책이 중심이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발상의 전환'을 주문하자 장관급으로 격상되고 '소비자를 통한 물가잡기'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해석된다. 단기적 성과는 거두기 어려운 대책이다. 정부가 물가잡기 전쟁의 장기화를 염두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기획재정부는 26일 언론브리핑을 통해 "정부가 직접 나서 (불합리한 가격 문제를) 적발하기보다는 소비자 주권 활동을 강화한다든지 물가를 올리는 요인 구조를 정비하는 식의 시장친화적 물가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7ㆍ26 물가대응 방안 중 소비자단체의 손배소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은 소비자 주권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자칫 소리만 요란하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수 있는 행정적 규제보다는 소비자들의 민사적 대응을 촉진시켜 기업들이 '소비자 무서운 줄 알게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위해 변호사 22명으로 구성된 소송지원단을 통해 법률자문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며 소비자단체가 피해 소비자를 모집하는 데 필요한 경비도 지원하기로 했다.
재정부는 또 식품ㆍ화장품 등에 대한 유통기한을 사실상 폐지하고 최상의 신선도 유지 기간을 표시하는 미국식 '퀄리티 베스트(Quality Best)' 제도 등으로 대체하는 방안도 차기 물가관계장관회의 때 논의하기로 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빵 등 유통기한이 지나면 물품 상태에 따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것까지도 무조건 폐기하는데 그 비용이 결국 소비자 가격에 전가된다"며 "불필요한 낭비 등에 따른 인상요인을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정부는 일명 '물가구조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물가 관련 부처의 제품ㆍ서비스 유통구조 혁신 활동을 지원하고 점검하겠다는 내용도 밝혔다.
정부는 3ㆍ4분기 중 전기료 이외의 추가적인 공공요금 인상은 가능하면 자제하겠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다만 관련 공공기관의 누적적자가 심각한 경우에 한해 4ㆍ4분기 중 두세 가지 공공요금을 매월 1건씩 소비자물가 상승률 이내의 범위에서 올리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카드 가맹점 수수료의 최저율(1.7%) 적용 범위를 현행 연매출 1억2,000만원 이하 업소에서 확대하는 방안도 다음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금융위원회는 이미 해당 범위를 연매출 1억5,000만원 미만 업소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자칫 '재탕ㆍ삼탕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