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엄마에게 부탁하지 마!

결혼·출산·육아 고비 넘으니 입시 뒷바라지 내몰린 워킹맘<br>공교육 이대로 방치하면 고3 엄마 휴직제 해야할 판<br>여성가족부라도 나서서 교육당국에 분노 전달해야


내년이면 큰아이가 고3이다. 기자가 미국에서 특파원을 한 덕분에 영어는 곧잘 하는 편이다. 영어 하나 잘하면 그만이지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 외 과목은 영 신통치 않다. 초등학생인 작은아이는 더 애먹는다. 한글을 다 깨우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초등학교에 입학한 작은애의 한글 실력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간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초등 3학년 때까지 두 자릿수 곱셈하다 유리수를 접한 작은애로선 학업 따라가기가 여간 벅찬 게 아니다. 참다 못한 아내가 학원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제 수준에 맞는 학원을 찾지 못했다. 요즘 아내가 작은애 가르친다고 끙끙 앓는다.

아이들도 고생이지만 아내는 더 난감한 처지다. 미국 가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뒀다가 귀국 후 간신히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했다. 남편 월급만 쳐다보고 살기가 미덥지 못한 건지 내친 김에 정규직 일자리를 찾는 눈치다. 그런데 큰애가 고3으로 올라가는 게 맘이 걸리는 모양이다. '동남아(동네에 남아 있는 아줌마)'로 주저앉아 큰애 입시 뒷바라지를 할 것인지 아니면 하던 일 제대로 할 것인지 갈림길에서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한다.


공부는 애들이 하지 엄마가 하는 것이냐고 반문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꼰대로 핀잔 받기 십상이다. 공부는 아이가 해도 대학 가는 길을 찾는 일은 엄마의 몫인 게 안타깝지만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사교육은 엄마의 조력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말이 좋아 조력이지 학원 상담실장 수준을 요구하는 게 요즘 세태다. 입시철인 요즘 조간신문에 끼어 배달된 학원 전단 내용은 가히 협박조다. 분석과 전략 없이는 숫제 대학 못 간다는 투다. 표준점수보다 백분위 활용이 유리하네, 선택형 수능의 가산점이 어쩌네 하고 온갖 분석이 나온다. 수천개에 이른다는 입시전형의 난해함은 굳이 언급할 것도 없다. 아무리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이 대학을 가른다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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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엄마 의존도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큰애가 다니는 학교의 학급 친구를 대상으로 몇 가지 설문지를 돌려봤다. 짐작은 했지만 결과는 상상 이상이다. 참고서를 직접 고른다는 응답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봉사활동을 직접 챙긴다는 비율 역시 20% 정도에 그쳤다. 이른바 스펙 쌓기의 대명사인 경시대회 정보 획득 창구 1순위는 단연 엄마(33%)였다. 물론 신뢰성이 약한 설문조사이긴 하나 '엄마의 아들과 딸'이라는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다고 엄마들의 부질없는 치맛바람이라고 치부할 순 없다. 대리만족이니 자기과시욕의 발현이라는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제 아이 좀 더 잘되기를 바라는 욕망을 폄훼할 일은 아니다. 갈등과 선택의 순간 낳고 길러준 엄마에게 의존하는 건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육정보전에 내몰린 이 땅의 엄마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은 죄인 아닌 죄인 심정이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고 한다. 이런 저런 행사에도 얼굴을 내밀고 여성 일자리 확대를 호소한다. 조 장관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고 고시 수석을 싹쓸이할 정도로 여풍이 거세지만 유리천장 뚫기 위한 관문을 40대에 맞닥뜨린다는 점이다. 아이 대학 진학을 앞둔 시기와 겹친다. 일에만 집중하더라도 깨기 어려운 벽이다.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의 위기를 다 넘기고 고위층으로 가는 문턱 앞에 여성은 또 한번 고민해야 한다. 내 욕심만 채우는 것이 아닌지 하는 자책감은 어렵게 지켜온 결심과 도전 의지를 허물어뜨린다.

대치동 학원 전성시대가 벌써 십수년째다. 교육당국에만 입시제도를 맡기기엔 지은 죗값이 너무 크다. 여가부라도 나서서 40대 엄마들의 분노를 전해야 한다. 학교가 마땅히 맡아야 할 일을 엄마에게 부탁하지 말라고. 그래서 교육정보전에서 해방시키라고. 이대로 내버려두다간 고3 입시 휴직제를 도입하자는 말이 안 나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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