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비롯하여 중국이나 일본의 큰 절에 가면 대웅전에서 십우도라는 벽화를 흔히 볼 수 있다. 어린 동자 하나가 소와 함께 있는 한가로운 그림이다.이 그림은 참선의 처음과 끝을 10단계로 나누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소로 상징한 뒤 소를 다시 찾는 과정을 한시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심우→견적→견우→득우→목우→기우귀가→망우존인→인우구망→반본환원→입전수수가 그 10단계다.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인생 행로는 이 十牛圖와 비슷하다. 鄭회장은 1933년 18세의 나이에 4번째 가출을 감행했다. 아버지가 키우던 소를 팔아 마련한 돈 70원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이 때부터 鄭회장의 十牛圖가 시작된 것일까? 鄭회장은 지금까지 잃어버린 소를 찾아 떠난 뒤 소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소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를 붙잡아서 소를 길들이는 그림을 그대로 밟았다.
올해 鄭회장의 모습은 6번째 그림에서 발견됐다. 「騎牛歸家」다. 소의 등에 앉아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판문점을 넘어 두번에 걸쳐 소 1,001마리를 끌고 고향(강원도 통천)으로 돌아가던 鄭회장의 바로 그 모습이다. 소 판 돈을 훔쳐 달아났던 18세의 동자가 83세의 백발이 되어 소떼를 몰고 돌아간 것이다.
이 모습이 바로 얼마 전인 것 같은데 鄭회장은 벌써 7번째 그림으로 자리를 옮겼다. 「忘牛存人」이다. 소는 아예 잊어버리고 유유자적한 모습이다. 지난달 금강산에서 본 鄭회장의 모습은 忘牛存人 그 자체였다.
鄭회장은 언제 또 어떻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것인가? 사람도 소도 모두 잊어버린 「人牛俱忘」, 소를 잃어버리기 전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返本還源」, 길거리에 모습을 드러내는 「入廛垂手」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鄭회장은 앞으로 당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十牛圖에서 8번째 그림인 「人牛俱忘」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十牛圖의 동자는 「人牛俱忘」과 「返本還源」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자는 마지막 「入廛垂手」에서 달마대사와 같은 맨발의 허름한 노인이 되어 다른 동자를 돕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鄭회장의 十牛圖는 크게 세 과정으로 나눠진다. 「尋牛」부터 「牧牛」까지 현대그룹을 키우는 과정, 「騎牛歸家」부터 「忘牛存人」까지 현대를 발판으로 판문점을 넘어 고향에 돌아가는 과정, 그리고 「人牛俱忘」부터 「入廛垂手」까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세속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鄭회장의 十牛圖에서 마지막인 「入廛垂手」는 통일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달마(鄭회장)가 동쪽(금강산)으로 간 까닭을 알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