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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여건이나 직장 출퇴근을 위해 자발적으로 세입자가 되는 자발적 하우스 노마드(House nomad)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전ㆍ월세를 전전하는 '비자발적' 하우스 노마드의 양산은 부동산 경기침체가 빚어낸 새로운 현상이다.
문제는 매매시장에 있어야 할 수요자들이 하우스 노마드로 남아 임대시장을 떠돌면서 전ㆍ월세가 상승을 부추기는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팀장은 "하우스 노마드가 증가하는 것은 집을 투자 수단이 아닌 거주 수단으로 보는 것"이라며 "주택시장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하우스 노마드 지역, 강남구=전통적인 하우스 노마드는 자발적인 경우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학원가와 선호 학교가 많은 지역에 전세로 산다든지 직장과 가깝거나 출퇴근 여건이 좋은 지역으로 이사하는 식이다. 실제로 서울시에 따르면 중심업무지역인 강남구와 용산구ㆍ중구ㆍ마포 등의 전·월세 가구 비중이 상대적으로 주거 지역이 많은 은평구ㆍ노원구 등에 비해 높다. 특히 강남구는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지역임에도 전·월세 가구가 13만457가구로 관악ㆍ송파에 이어 서울에서 세 번째로 많다.
마포에 아파트를 두고 현재는 서초구에 살고 있는 홍모씨(40)는 "기존 집 전세금과 대출을 받아서 현재 집을 구했다"며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교육 환경이 좋은 이곳에 전세로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팔고 싶어도 못 파는 집=내년 3월 전셋집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 전모씨(35)는 요즘 고민이 많다. 집이 좁아 좀더 넓은 집을 구하고 싶지만 지금보다 4,000만원 정도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8년에 2억원을 주고 매입한 재개발 지역의 빌라만 처분하면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2009년 하반기부터 내놓은 물건은 3년이 지났는데도 팔리지 않고 있다. 전씨는 "기존 집이 팔리면 대출을 조금 더 받든지 해서 어떻게든 집을 마련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내년에는 대출을 더 받아 다른 전셋집을 알아봐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주택경기 침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전·월세를 전전하는 하우스 노마드도 생겨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 투자가 성행하면서 재개발 지역 지분이나 아파트를 분양 받고 자신들은 타 지역에 전세로 살던 사람들의 경우 최근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기존 집을 처분하려 하지만 팔리지 않자 세입자로 전전해야 하는 막막한 현실이 돼버린 것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주택경기 침체가 계속되면 비자발적인 하우스 노마드는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며 "구매력이 있는 사람이 집이 팔리지 않아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주택 임대차 시장 안정돼야=인구구조가 변하고 주택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발생하는 하우스 노마드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깝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자신의 집을 처분하지 못하고 세입자로 살아가는 비자발적 하우스 노마드는 결국 주택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매매 수요로 전환돼야 할 이들이 전·월세 시장에 남아 있게 되면 가격상승으로 이어진다. 전ㆍ월세 보증금이 높아지면 결국 주거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장성수 주거복지연대 전문위원은 "전셋값이 올라도 상승한 전세금액의 일부를 자기가 보유한 주택의 전세 보증금을 올려 받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전세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우스 노마드 양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부동산시장의 교란을 막기 위해서는 임차시장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상영 명지대 교수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 비자발적 하우스 노마드가 양산될 수 있다"며 "전·월세 가격 급등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주택 임차시장의 구조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