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공백 현실화로 우려했던 글로벌 시장 개척 및 신규 시장 진출 등 굵직한 프로젝트의 차질도 현실화되는 등 재판 후폭풍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계를 중심으로 재판부가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의 증언 없이 선고한 것에 대해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는 선고 직후 김 의장 주재로 긴급 CEO 회의를 갖고 초비상체제에 들어갔다. 계열사 전 CEO가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고위 경영진은 현재의 상황이 '사상 최대의 위기'라며 난국을 헤쳐나갈 방법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김 의장은 "사상 최대의 위기로 신규 사업 등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프로젝트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위기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각 CEO가 주도가 돼 일상 사업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글로벌 시장 개척 및 신규 시장 진출 등 미래 사업 차질도 현실화되고 있다. SK E&S는 STX에너지에 대한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최태원ㆍ재원 총수 선고 결과가 내려진 27일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SK 관계자는 "1조원에 달하는 STX에너지 인수전에 뛰어들려면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데 항소심에서 최재원 부회장까지 구속되면서 인수를 포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SK그룹 성장의 두 축인 글로벌 사업과 신수종 사업을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각각 맡아온 것을 감안하면 타격이 클 것으로 관측된다. 최 회장은 2∼3년 전부터 전략적 대주주로서 '글로벌 비즈니스 서포터' 역할에만 전념하겠다면서 글로벌 사업을 진두지휘해왔고 최 부회장은 그룹의 신수종사업을 전담해왔다.
최 부회장이 맡아온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SK 배터리 서산공장은 전기차 1만대에 공급 가능한 자동화 양산라인을 갖추고 지난해부터 가동이 시작됐으나 추가 투자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아울러 최 회장의 두 차례에 걸친 제안으로 태국의 잉락 친나왓 총리가 깊은 관심을 표명했던 정보기술(IT)을 이용한 홍수 및 재해 조기경보·대응시스템 구축사업도 최 회장 구속 이후 사실상 무산되고 말았다.
한편 재계에서 이번 재판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원홍 고문이 송환됐음에도 판결을 강행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며 "한마디로 법적 논리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도 "총수의 잘잘못을 엄격히 따지기보다 정서적 분위기에 판결이 휩쓸리는 것 같다"며 "총수 잔혹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