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사생활'을 법정에 세운 변호인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인 측이 법정에 나온 증인에게 물었다.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내가 그런 이미지가 있어서 고민했는데 이런 일이 터져서 괴롭다'고 말했는데 피해 여학생에게 그런 이미지가 실제로 있나요?" 곧바로 재판부가 나섰다. "그런 이미지라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그 질문에 변호인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바꿔 묻겠습니다.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이미지, 남자 친구가 있으면서 다른 남자를 또 사귄다는 얘기가 대학 내 있었습니까?"라고 다시 질문했다. 지난달 31일 이른바 '고대의대 성추행' 사건의 3차 공판에서 피고인 배모씨의 변호사는 피해자의 '사생활'을 법정이라는 무대 위에 적나라하게 펼쳐 놓았다. 배씨는 세 명의 피고인 가운데 유일하게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그는 같은 학교 학생들에게 피해자의 사생활이 문란한지를 묻는 설문지를 친구들에게 주고 서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법정에서 사생활 문제가 거론된 후 피해자는 결국 며칠 후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제가 가해자들과 사귀는 관계였다든가 잠자리를 한다는 소문이 돈다고 들었습니다"라며 직접 항변해야만 했다. 그뿐만 아니라 홀로 남자 세 명을 따라간 세간의 질책에 대해서도 "저는 남자가 아니라 정말 친했던 친구들과 같이 갔던 것"이라고 해명해야만 했다. 왜 사건의 본질과는 동떨어져 있는 '행실'과 '이성 관계'를 건드리는 것일까. '행실 나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건드려 진술의 신빙성을 흐리고 싶다는 것이 변호인의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평소에 문단속을 잘 안하고 다니는 집에 강도가 침입해 재산을 몽땅 가져갔다고 가정해보자. 문단속이 허술했다는 이유가 과연 범행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겠는가.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면 매일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어느 재판장의 발언을 참고하라. "피해여성이 사건 전에 성범죄 관련 사기나 무고죄로 처벌받았다면 몰라도 사생활에 대한 문제는 어디까지나 곁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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