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라는 뼈아픈 경험을 한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외환위기설에 휩싸인 것은 강력한 외환규제책 등 현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자초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경제성장의 근간이 됐던 '원자재 붐'이 좀처럼 되살아나지 못하는데다 살인적 인플레이션 등 고질적인 경제병폐가 더해져 아르헨티나의 경제상황은 위기감이 감도는 신흥국 가운데서도 가장 나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2011년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한 후 외채상환으로 외환보유액이 점점 줄어들자 달러의 국외유출을 막는다며 강력한 외환규제안을 도입했다. 구체적으로 개인이 외국여행을 위해 달러를 사려면 돈의 출처와 여행목적 및 일정 등을 당국에 구체적으로 밝히도록 했고 부동산 거래에서의 달러화 사용도 금지했으며 기업의 국외송금 역시 억제했다.
하지만 이는 국민들의 달러 수요만 자극해 아르헨티나 페소 가치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또 아르헨티나 정부가 계속 물가상승률·경제성장률 등 주요 경제지표를 조작해 발표한다는 분석이 잇따르며 국제투자가들도 아르헨티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스페인 에너지 회사 앱솔의 아르헨티나 내 자회사인 YPF를 일방적으로 국유화해 스페인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의 신뢰도 잃게 됐다.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 국민이 겪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정부는 물가상승률이 11%라고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물가상승률이 28%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경제회복 기대감이 꺾이면서 살인적인 고물가가 엄습한데다 사회적 불안감으로 대규모 정전, 도난, 상점 폐업 등 악재가 겹쳐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13년 전 디폴트에 빠졌던 때와 비슷하게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당국이 마땅히 내놓을 대책도 없는 상황이어서 향후 사태는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페소 가치 하락→물가상승→금융시장 및 사회 불안 가속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환가치 방어에 나서야 하지만 외환보유액은 바닥을 드러냈다.
현재 중앙은행의 보유액은 292억6,000만달러로 7년 만의 최저치에 불과하다. 내년까지 210억달러의 외채를 갚아야 해 더 이상의 시장개입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국제금융협회(IIF)의 남미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라몬 아라세나는 "앞으로 물가가 최대 40%까지 폭등할 가능성이 있다"며 "보유외환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전방위적인 위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 역시 아르헨티나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를 분석해 향후 5년 안에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에 빠질 확률이 79%나 된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외환반출을 막기 위해 국민의 해외 인터넷 쇼핑사이트 이용횟수를 연간 두 차례로 제한한다는 기상천외한 조치까지 내놓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촉발된 위기감이 신흥국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은 더욱 큰 문제로 지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사태가 확산돼 아르헨티나의 경제나 주식시장이 무너질 경우 브라질 등지로의 '스필오버(파급효과)' 현상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2005년 이래 수출 및 수입 부문에서 미국과 중국에 이어 각각 상호 3위의 무역규모를 기록해왔다. 이 밖에 주요 외신들은 고물가-외자유출 등 비슷한 문제를 가진 신흥국 전역으로 불안감이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는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신흥국의 성장엔진격인 중국의 1월 제조업경기가 급격히 냉각된 것도 중국발 경기둔화에 따른 성장불안감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코메르츠방크의 페터 킨셀라 외환투자전략가는 "신흥국 금융당국이 앞으로 펼쳐질 변동장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현재의 신흥국 금융시장 조정 추세가 위기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