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지난 2000년대 들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선진적인 나라살림 체계를 갖춰왔다. 중기재정계획 도입은 그 핵심이며 이에 수반되는 재정준칙과 예산 총액배분자율편성방식 등도 제도화됐다. 다만 우리 중기재정계획은 아직 실행 강제력이 없어 자칫 선언적 계획에 그칠 위험에 상시적으로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우리보다 한층 모범적으로 중기재정계획을 꾸려온 스웨덴ㆍ네덜란드ㆍ영국ㆍ캐나다 등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특히 스웨덴과 네덜란드는 중기재정계획을 정부와 의회가 반드시 실천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정부가 중기재정계획을 매년 4월 제출하면 의회가 이를 심의, 의결하는 데 이렇게 의결된 계획은 반드시 따르도록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9월 이듬해의 예산안을 제출하며 의회 역시 예산안을 증액할 경우가 생기더라도 중기재정계획의 한도를 벗어날 수 없다. 이는 매년 9월 말을 전후로 이듬해 예산안을 제출할 때에 이르러서야 중기재정계획을 제출해 의회가 숙고할 틈도 주지 않는 우리 정부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아울러 해당 계획을 단순 참조 자료로만 삼고 예산 확정시 별다른 책임도 지지 않는 우리의 국회와도 비교된다. 네덜란드의 경우 중기재정계획이 일종의 '연립내각합의서' 형식으로 정해진다. 따라서 법적 구속력은 없어도 강력한 정치적 구속력을 갖게 된다. 아울러 세입이 예상보다 늘어난다고 해도 정부가 이에 편승해 자동적으로 지출을 늘리지 못하도록 하는 '방화벽' 장치도 갖췄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이는 우리 정부의 최근 추가 감세철회 등에 따라 내년 재정수입 총액이 늘면서 자동으로 연동돼 지출도 늘어나게 된 상황에 비춰볼 때 시사점을 준다. 프랑스의 경우 중기재정계획 집행에 대해 '책임화 원칙'을 부여하고 있다. 현대호 한국법제연구원 박사는 '주요국의 중기재정계획 법제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프랑스의 중기재정계획에 대해 "주요 내용에 대한 (정부의) 위반 내지 불이행이 단순한 정책의 문제가 아닌 위법의 문제로 승격됐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경우 장밋빛 경제전망에 기대 재정수입을 부풀려 결과적으로 적자재정 위험을 높이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 중기재정정책을 짤 때 경제성장률 전망을 보수적으로 잡는 것이 대표적 방식. 예컨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을 기준치보다 1%포인트가량 낮게 잡는 등 다소 비관적 상황을 가정해 미래의 나라살림 방향을 정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캐나다와 네덜란드가 정부가 장밋빛으로 재정계획을 꾸리지 못하도록 견제 장치를 두고 있다. 물론 정부가 아무리 제대로 중기재정계획을 짜도 의회가 이를 소화할 능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마치 투수가 우수해도 포수의 실력이 떨어지면 마음대로 제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예산분석센터장은 "정부의 균형재정 달성 의지는 훨씬 강해졌지만 정작 국회가 중기재정계획을 제대로 심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한 것 같다"며 "국회 각 상임위원회가 서로 예산을 두고 다투는 우리의 현실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