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인사파행 상징 손보협회, 그곳에 무슨 일이

관피아 논란 눈치에 10개월째 수장 공석<br>'대행 체제' 한계에 핵심사업 줄줄이 표류<br>내부 인사적체 심화 부작용에 車 사고 건수제 도입 추진 등<br>협의도 힘 안 실려 제자리걸음<br>모피아·유관단체 밥그릇 싸움… 민간단체 불구 후임선출 눈치



지난 6월22일 손해보험협회는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예정됐던 것보다 6개월이나 늦게 실시된 정기인사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인사권자인 협회장이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회장 '직무대행'인 장상용 부회장이 좀 더 서두를 수는 있었지만 언제, 누가, 협회장으로 부임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직무대행이 선뜻 나서기는 어려웠다. 인사뿐 아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협회의 핵심 기능이 사실상 '식물화'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인사 파행이 가져온 그늘은 짙다.

정부부처 고위직 인사 파행이 민관기관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손보협회는 그 상징물이 되고 있다.


손보협회는 엄밀하게 얘기하면 회원사(손해보험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간기관이다. 하지만 규제 당국과의 조율을 담당해야 하는 역할론 탓에 회장 인사에 '관(官)'의 요소가 많이 개입되는 곳이다. 오랜 세월 '관료들의 놀이터'라고 해도 무방했다. 관피아가 독식해온 관행은 결국 최악의 인사 파행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문재우 전 손보협회장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것은 지난해 8월 말. 그 이후 10개월 넘게 손보협회는 회장 자리를 비워둔 채 부회장의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 부처의 입김이 미치는 각종 단체 중에서도 공백 기간이 가장 길다. 인사 정책 실패의 중심에 있다고 표현되는 이유다.

물론 하마평은 많았다. 관례대로 주로 전직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 인사가 물망에 올랐다. 내정 단계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척결논의가 시작되면서 모두 흐지부지됐다.

지난 10개월간 손보협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 없이 운영돼왔다. 장 부회장의 무난한 업무처리가 주효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파행운영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관찰된다. 인사만 놓고 봐도 그렇다. 이번 인사에서 A 임원은 계약기간이 1년 연장됐다. A 임원이 첫 선임된 것은 지난 2007년. 이로써 A 임원은 7년간 임원직을 수행하게 됐다. 손보협회의 경우 통상적으로 임원 임기가 3~4년인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이다. 반면 대다수 승진대상자의 경우 정기인사가 6개월가량 늦춰지면서 그 기간만큼 승진 효과를 빼앗겼다. 윗선에서 시작된 파행 인사가 원칙 없는 인사와 형평성 잃은 인사로 이어진 셈이다.

손보업계의 한 관계자는 "손보협회는 원래부터가 인사적체가 심한 곳인데 이를 풀려면 위에서 먼저 나가줘야 한다"면서 "그러나 인사권자에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다 보니 예상외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손보협회 본연의 기능도 실종됐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손보업계는 올해 중점추진사업으로 '자동차사고 건수제 도입' '동일증권 분리' 등을 제시했다. 하나같이 손보사들의 주력사업인 자동차보험의 수익성과 직결된 문제들이지만 금융 당국과의 협의는 사실상 정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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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을 풀어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나타난 당연한 결과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6월 제시한 '10-10 밸류업' 비전에 대한 후속 작업도 미미하다. 10년간 우리나라 금융업 부가가치 비중은 10%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핵심인데 외국인 환자 유치 등과 같은 신사업이 손보업계의 과제로 주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또 다른 손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제시한 밑그림에 구체성을 부여하려면 협회장이 당국 수장들과 만나 논의를 심화시켜야 하는데 아무런 진척이 없다"며 "직무대행을 두고 격이 안 맞다는 시선이 있다 보니 협회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통상 은행연합회·생보협회·손보협회 등 금융 유관단체의 경우 회장은 대외업무를 총괄하고 부회장은 내부살림을 챙긴다. 특히 회장은 회원사를 대변해 금융 당국과 규제 완화 등을 논의해야 하는 만큼 책임과 권한이 부회장에 비해 막강하다. 손보협회는 부회장이 이 역할을 대리수행하고 있는 것인데 가뜩이나 의전을 중요시하는 관료사회의 관행상 회장직무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업계의 목소리라며 자기주장을 펼쳐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협회장은 금융권 공식행사에서 주로 헤드테이블에 배정되는데 최근 일부 행사에서 손보협회만 테이블 순위에서 밀려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손보협회장이라는 자리는 정부지분이 하나도 없는 순수 민간 이익단체다. 정부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회장을 뽑으면 된다. 협회 정관을 보면 후보추천위원회가 복수의 회장 후보를 추천하고 회원사 대표들이 모여 투표로 최종 신임회장을 추대하게끔 돼 있다.

그런데도 '보이지 않는 손(모피아)'의 힘이 작용하면서 장기공백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관료는 관료대로, 유관단체들은 그들 나름대로 치열한 눈치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관료사회는 관피아 척결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동시에 자기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매의 눈으로 주변을 단속한다. 유관단체들은 사정에 따라 관료 출신을 선호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지만 사회적 여론을 한껏 의식하고 있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관료 출신 회장을 선출했는데도 '낙하산 논란'이라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연말까지 지금의 상태가 계속되는 게 오히려 낫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11월에는 은행연합회장, 12월에는 생명보험협회장의 임기가 만료된다. 굳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먼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단체장 인사가 실리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곳에서 협회 본연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금융계 고위관계자는 "손보협회장 하마평에 올랐던 사람 중에 민간출신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마저 관료집단의 간택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이익단체의 인사가 정치적으로 변색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떤 순기능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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