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우리나라 수출이 대망의 3,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세계 11번째이자 중계무역 중심인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세계 9번째의 쾌거다. 2004년 2,000억달러를 넘어선 이후 2년 만에 3,000억달러 고지를 밟은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빠른 속도이다.
무역 업계는 잔치 분위기다. 수출 역군들은 그 노고를 치하받고 기쁨을 누릴 만하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정쟁 가열, 부동산 광풍, 계속되는 소비 위축 등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경제가 이만큼 버티는 것은 ‘잘나가는 수출’ 때문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기업들은 고유가 및 원자재가 급등, 환율 하락 등 녹록지 않은 대외 여건들을 땀과 노력으로 극복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 빛과 그늘이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수출 3,000억달러 달성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5년 전만 해도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중소기업 비중은 43%였지만 지금은 32%로 뚝 떨어졌다. 산업구조 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유가, 환율 하락 등의 악재가 중소기업을 수출 전선에서 밀어낸 탓이기도 하다. 수출과 산업 현장에서마저 대기업ㆍ중소기업간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수출보험공사가 6일 발표한 수출기업 221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중소기업의 어려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소 수출기업은 이 조사에서 손익분기점 환율이 달러당 951원, 이윤을 확보하려면 991원은 돼야 한다고 답했다. 6일 환율 920원대가 붕괴됐으니 중소기업은 엄청난 출혈을 감수하고 있는 셈이다.
수출보험공사 측은 환율 900원대가 붕괴되면 대다수 중소기업이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수출 전선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산 시화공단의 한 중소 업체 사장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허리띠 졸라매고 수출했지만 남은 건 한숨과 빚뿐”이라며 “마지막까지 버텨보려고 하지만 자신은 없다”고 했다. 수출 3,000억달러 시대의 그늘이다.